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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05. 2022

발리에서 띄우는 편지 2

무용의 시간

저는 지금 우붓에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이동했으니 딱 일주일 만이네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주일이 어떻게 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입니다. 아무것도 안 할 계획으로 발리에 온 터라 별다른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와서도 딱히 뭘 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때마침 허리를 다친 덕분에 더 더욱 뭔가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허리가 아프니 요가도 어렵고 서핑도 어렵고, 한시간 이상 걷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남들 다하는 거 저도 하려고 기웃거렸을 거고, 또 종일 걷거나 활동하며 몸을 혹사시켰을 거거든요. 저는 활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리를 다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덕분에 원래 계획인 ‘아무것도 안하기’를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매우 심심하게 보내는 일상


이곳에서 제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합니다. 주로 걷고, 먹고, 마시고, 쓰고, 자기로 이루어지죠. 하루 4~5번씩 30~40분씩 걷습니다. 여기저기 걸으며 구경하다, 지치면 오토바이를 빌려 우붓 이곳저곳을 쏘다닙니다. 배고프면 식당가서 밥 먹고, 목마르면 카페 들어가 음료수 마시고, 뭔가 떠오르면 글을 쓰고, 잠이 오면 잡니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땐, ‘실용성’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건 지금도 제 핵심가치들입니다) 무엇을 하든 최대한 빠른 시간에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삶에 유용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무용無用’한 활동과 시간을 매우 싫어했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정말 쓸모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생각보다 그게 싫지가 않습니다. 사실 즐겁습니다.


중요한 건 '열심히'와 '멍때리기'가 균형을 이루는 것


꽤 오랫동안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잘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라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제 두려움을 감추는 행위일 뿐이었더라고요.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더욱  ‘유용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무용함'의 가치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유용함' 이상으로 중요한 건 ‘유용함과 무용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데요, 힌두교에선 선과 악을 철저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이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균형 잡힌 세상이 된다고 보지요. 선한 신도 악한 일을 지를  있고, 악한 신도 나름 정의로울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념이 마음에 듭니다. 모든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말입니다.


좀 쓸모 없어도 되잖아요. 가끔은 비어 있어야 뭔가를 담을 수도 있고, 새로운 쓸모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 더 비어있길, 더 가벼워지길 바라며

발리의 바람 한 줌을 오늘 마음편지에 동봉해 보냅니다.

Terima kasih (뜨리마 까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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