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순간을 사는 우리가 던져볼 질문 하나
"난 뭔가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다 커서 집을 떠나는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중, 엄마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상 돌아보니 별 대단한 게 없었다는 걸 깨닫고 터진 눈물이었죠. 영화 <보이후드>(2014)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를 12년을 촬영한 걸로 유명한데요. 그 긴 기간 동안 같은 배우들로 촬영하면서 실제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극중 엄마의 일생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또 다시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그러는 와중에 자식 둘을 알뜰살뜰 키워 대학에 보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는데 지나와보니 딱히 대단한 건 없었다는 거죠. (죽을 날만 앞두고 있을 뿐) 그냥 일상이 모여서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을 만들어왔다는 걸 발견한 것 밖에는요.
극중 아들이 대학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순간을 잡고 싶다는 말을 하잖아. 근데 사실 그 순간이 우릴 잡는게 아닐까."
위 장면들을 여러 번 돌려보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뭔가 대단한게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쁘고 가슴벅찬 순간들이 많긴 했지만, 그도 결국 순간에 불과했죠. 뻔한 얘기지만, 뭔가 대단한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순간을 사는 것'이라는 게 다시 한번 머리를 치고 갑니다. 인생은 한 점의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점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과정이니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잡을 건가요?
예전에 가수 엄정화가 모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본인 히트곡이 굉장히 많은데, 이전의 곡들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하더군요. 한창 활동할 때는 너무 힘들고 지겹게 느껴지기만 하던 시간이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순간들이 미친듯이 그리워서 눈물이 펑펑 난다고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추억'이란 것도 잘 생각해보면, 당시는 지겹고 힘들고 귀찮은 순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아주 그리워지는 기억이 되어버립니다.
여행도 마찬가집니다. 여행할 때는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 투성이인데, 지나고나면 그게 '그리운 추억'으로 둔갑되고 또 다시 경험해지고 싶어지죠. 얼마전 발리를 한달 간 다녀왔는데요, 아무것도 안 할 계획으로 떠나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멍 때리다가 돌아왔습니다. 그게 지겹기도 했는데 시간은 정말 빨리 가더군요.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지겹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이 한가한 이 순간을 내가 조만간 그리워하겠구나.' 역시나,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발리가 바로 그리워지더군요. 그 한가한 시간까지 말이죠.
영화에서처럼 순간은 별로 대단할 것이 없습니다. 밥먹고, 똥싸고, 일하고, 놀고, 잠자고, 고민하고, 만나고... 그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 하루가 모여 씨줄 날줄로 엮여가며 인생이라는 걸 만들어내죠. 그런 의미에서 한번 생각해볼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 싶으냐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데요. 정말 중요한 질문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으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건 '순간'이지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끊임없이 지속되는 '과정'이니까요. 한 순간에 끝내고 마는 게 아니라, 내 일상으로 불러들여서 하루 하루 엮어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번 주말동안 생각해볼 화두를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나요?
내 앞에 놓여진 순간순간들을 어떤 식으로 잡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