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삶을 글로 써보기
요새 글쓰고 싶어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왜 쓰고 싶냐고 물어보면,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거나, 나를 찾기 위해서, 혹은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가장 망설여지는 부분이 바로 '무엇을' 써야하느냐죠. 저는 그럴 때마다 이 말을 꼭 해줍니다.
"인생 1막을 쓰세요."
새로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
항해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배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현위치를 파악해야만 앞으로 어디로 갈지 명확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방향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거나 방향을 재설정하고 싶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기 전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나온 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 삶을 볼 수 있으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향도 명확해집니다. 지나온 길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글’로 적어보는 겁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던 인상적인 일들을 하나씩 적어가보는 것이지요.
지나온 궤적에 앞으로 삶의 힌트가 있다
얼마전 30대 직장인을 코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간 잦은 이직을 하며 거의 10군데가 넘는 직장을 이동해다녔는데, 가장 짧게 다닌 곳은 3일이었죠. 앞으로는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싶고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해온 방식을 바꾸거나 방향을 바꾸려면 역시 가장 먼저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을 보면 됩니다.
가장 먼저 내가 왜 그렇게 자주 회사를 이직했는지 먼저 보는 겁니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던 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봅니다. 그때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다보면,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을 마주하면 분노나 화가 떠오릅니다. 분노나 화는 내게 ‘소중한 것을’ 누군가가 건드렸을 때 일어나는 감정적 대응으로 그 순간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고객은 자신의 지나온 커리어를 글로 하나씩 써보면서 내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 하나씩 찾아갔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글로 쓴다는 것
이처럼 지나온 길을 명확히 보게 되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떻게 대처해왔는지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거꾸로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글로 쓰면 더 잘 보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쓰는 건 단순히 기억을 복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지나온 시간을 현 시점에서 쓰는 건, 기억 복구가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고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쓰다보면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들 생깁니다. 괴롭고 힘들기만 했던 순간들에도 다른 면이 보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힘들다고만 여겼던 그 시간에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걸 다시 보게 됩니다.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인생을 살아가는 자립심이 길러졌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보다 보면 감사함이 생겨나고 내가 그간 잘 살아왔다는 대견함도 듭니다. 그렇게 하나씩 내 이야기들이 모아가면, 그 이야기들이 어떤 길을 만들게 된 것을 보게 되고,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로 연결되는 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내 이야기를 쓸 때 2가지는 기억하기
내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적을 때 당부하는 것이 2가지 있습니다.
첫째, 그 시간을 살아온 나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해줍니다. 지나온 시간에 먼저 감사하고, 그를 내가 글로 적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과거의 내게 아주 정중하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글을 적다보면 여러 감정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프랑스 심리학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변화에 있어 가장 필요한 건 슬픔’이라고 말했습니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는 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데 반드시 필요한 감정입니다. 내 지나온 시간을 정리할 때도 감사함을 가지고 슬프면 슬픈대로 화나며 화난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필요합니다.
둘째, 매우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적다보면 생각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처절히 깨질 수도 있습니다. 애벌레가 자신의 몸을 녹여 그를 양분으로 나비의 성체를 만들 듯, 과거의 삶을 글로 적는 것도 비슷합니다. 과거의 자신을 녹여 그를 양분으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는 작업과도 같죠. 과거의 나를 돌아보다 보면 용서하지 못할 어떤 부분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어떤 나를 만나더라도 내치지 않고 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나를 만나더라도 예우를 갖추고 정중히 대합니다. 그럴 때 그 시간들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20대만이 아니라, 은퇴를 앞둔 중년도, 주부도, 직장인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목적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든 해답을 주려고 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해답은 그의 목적지이지, 결코 나의 목적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방향을 찾고 있다면, 내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가만히 앉아 지나온 시간을 한번 글로 적어보면 어떨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기억부터 하나씩 적어내려가는 겁니다.
어떤 순간이 찾아오든 내치지 말고 포용하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 시간들이 점차 녹아들어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움틉니다.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과거의 내가 녹아들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며 교체해가는 일이죠.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준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나에게 그럴 시간과 기회를 준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