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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30. 2023

분노는 뭔가를 해내지

강력한 감정 에너지.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화가 많은 인간이다.

평상시에 화를 잘 내지는 않지만

누군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건드리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엄청난 분노를 터뜨린다.

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이 십년 넘게 고생했다.

폭식증은 물론이고 자기혐오, 갈등을 경험해야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감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고

그 중에서도 분노를 깊이 연구했다.


오랫동안 나를 관찰하고 또 연구하면서 

지금은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터트리거나, 내 자신에게 터트리지 않는다.

대신 그 힘을 운동, 글쓰기, 명상 등으로 안전하게 발산시키거나 

배터리처럼 모아두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동력으로 쓴다. 


감정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에너지다.

그런데도 우린 감정을 다스리고 이해하는 방법을 어디서고 배워본적이 없다.  

그래서 글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번 글에선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와 '분노를 대하는 자세'를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쓰다보니 줄였는데도 글이 좀 길다 ^^;)




감정을 잃어버린 자가 치뤄야 하는 대가


"우리가 직장 생활과 같은 조직생활을 하면서 우울감에 빠지는 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잃어버린 자는 욕구를 잃어버리게 되며 나아가 자기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감정을 심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런 마음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살피는 것이다."


정혜신 정신과 박사가 책 <당신이 옳다>에서 쓴 말이다.

이 말을 정말 공감했던 게, 그간 내게 상담하러 온 분들이나 수업을 통해 만나온 여러 수강생 가운데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대신 타인의 기대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을 살면서)

 우울감, 무력증에 시달렸고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린 채 지냈다.


정혜신 박사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옳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한 존재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가치관, 취향은 존재의 구성요소지만,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따라서 감정을 파고들면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군지 찾고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내 감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모든 감정은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특정 감정을 억누르고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특히 행복, 편안, 즐거움같은 긍정적 정서는 권장하지만, 슬픔, 분노, 공포, 슬픔 같은 부정적 정서는 억누르거나 혐오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런 행복, 슬픔, 두려움, 공포, 분노 등 모든 감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감정은 기본적으로 '생존'과 '자기보호' 역할을 한다.

감정은 어떤 자극이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행동을 하게 하거나 행동을 멈추게 만든다.

예를 들어 슬픔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상황에 거리를 두게 만들고,

혐오는 해로울 수 있는 모든 자극을 거부하여 스스로를 보호한다.


우리에게는 놀람, 혐오, 공포, 슬픔, 행복, 분노의 6가지의 기본감정이 있다.

이 감정은 저마다 역할이 있어 그를 이해하면 도움이 되는데, 역할은 다음과 같다.


놀람: 예상치 못한 자극에 대응해 생각을 비우고 상황에 집중케 함
혐오: 해로울 수 있는 모든 자극을 거부하여 스스로를 보호함
공포: 잠재적 위험상황에서 긴장을 유발하고 생존을 위한 행동촉진
행복: 욕구를 충족하고 도움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반복하게 함
슬픔: 무력함을 깨닫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비활동성 에너지 (에너지축적&자기보호)
분노: 좌절감 또는 매우 싫은 상황에 직면할 때 극복/도전/해결하려는 에너지


감정의 또 다른 역할은 '욕구 충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욕구의 충족도에 따라 나타나는 감정의 결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하고, 기쁘고 느긋해지고, 안도하고, 즐거워진다.

반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짜증나고, 힘들고, 피곤하고, 슬프고, 불행해진다.

욕구와 관련없는 자극에는 감정이 일지 않아 무덤덤하다.

따라서 감정을 살피면 내 욕구가 충족되었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감정을 '내면의 지도'라고 했다.

내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 안에 뭐가 있는지 그를 감정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판단하고 통제할 게 아니라.  '왜 그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가 나면 억누르거나 터뜨릴 게 아니라,

왜 내가 화가나는지 상황과 나의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면,

나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


 

감정은 에너지 덩어리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에 따라 많은 결정과 선택을 한다.

그래서 '이성'보다 힘이 센 건 '감정'이라고 말한다.  

여러 감정 중에서도 특히 분노는 힘이 세다.

매우 강렬하고 공격적인 에너지라 다루기 쉽지 않지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임상심리학자인 '해리엇 러너'는 "분노는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는 신호"라고 말한다.

분노를 잘만 활용한다면,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선 내 안의 분노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먼저 분노가 왜 생기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를 이해하면 분노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분노에 담긴 메시지; 분노는 왜 생기나?


학술적으로 분노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상태'다. 호주 심리학자 '피트니스'는 2000년에 호주 직장인 175명을 대상으로 언제 화가 나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크게 5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이 중 부당하게 대우받은 경우가 44%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부도덕한 행동을 봤을 때,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존중받지 못할 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할 때 등이었다.


분노의 원인을 정리하면 크게 2가지다.

1. 욕구가 방해받거나 좌절됐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무시당했다, 존중받지 못했다'라고 할 때 화가 난다.

특히 자존감의 손상과 관련이 크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존감에 손상을 입으며 분하게 여겨 크게 회를 내게 된다.

 

2.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볼 때

옳지 않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보았을 때, 내 신념과 맞지 않을 때,  분노가 촉발되기도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치관, 믿음이 건드려질 때 사람들은 화를 낸다.

믿음과 가치관이 저마다 다른만큼 분노를 느끼는 포인트도 사람마다 다르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마땅히~라면 --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분노의 힘; 분노는 변화를 만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분노는 변화의 원동력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감정은 '에너지'이고, 그 중에서도 분노는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 분노에는 나를 지키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그를 활용할 수 있다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걸 바탕으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이뤄낼 힘이 생긴다.


분노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3가지다.

1. 자신을 보호하고

2. 상황에 대해 자각, 각성하게 만들며

3. 행동을 촉구해 변화를 이끌어낸다.


책 <디퓨징: 분노해소의 기술> (조셉 슈랜드 저)에 따르면

분노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생겨난 감정이다.

분노가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지 잘 보여주는 인물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다.   

마하트마 간디 (출처: 위키백과)


간디는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영국에서 유학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변호사로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신 남아프리카로 떠났다. 그곳에서 성공을 거둔 다음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겠다는 심산이었다. 남아프리카에 도착한지 일주일 뒤, 간디는 프리토리아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남아프리카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간디와 같은 객실에 있던 한 백인이 승무원에게 유색인종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승무원은 간디에게 3등칸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간디는 자신은 엄연히 1등칸 표를 샀으니 옮기지 않겠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날 밤, 간디는 추운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크게 분노하게 된다. 나아가 다른 인도인이 어떤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지 깊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리토리아에 도착한 그는 인도인이 당한 부당한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인들을 규합했다. 간디는 훗날 이 마리츠버그 기차역에서 자신의 정치운동의 사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상황이나 신념이 건드려질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분노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깊이 각성하게 하고 나아가 뭔가 행동하도록 촉구한다. 화를 표현하는 건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계를 표현하는 행위고, 자존심을 지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분노는 변화의 가장 좋은 원동력이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그 불씨가 오래간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에 지속적으로 불을 지피는 건 스스로에 대한 분노다. 타인에 대한 분노는 복수심을 불러일이키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분노는 변화의 계기가 된다.


"분노는 무언가를 해내지. Anger get shit done."

- 아난시 (서아프리카의 거미신)



분노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하지만 분노를 표출한다고 꼭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사실  화를 내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닌데, 화를 낼 수록 화가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패닉몬스터 (출처: Ted)

무작정 표출하는 것도,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답이 아니다. 잘못 표출했다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타인이나 스스로에게 줄 수 있고, 억지로 참게 되면 화병이 난다.  참고로 웃프게도 화병은 한국인에게만 존재하는 병이다.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는 ‘화병’을 ‘hwa-byung’이라 기재했는데, 화병은 분노의 억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화병은 주로 마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것으로,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신경성인 화 즉, 울화로 인해 나타나는 모든 병증을 일컫는다.


전문가들은 화를 내는 것보다, 화를 표출하는 방식과 그 이후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

현명하게 다스리려면 먼저 나의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

화가 나면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할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화가 나는구나, 왜 화가 나는걸까?'라고 나와 상황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나의 분노가 올라오는 자리는?


 일반적으로 슬픔, 두려움, 공포, 행복 같은 감정은 대개 비슷한 지점에서 느끼지만, 분노를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미친듯이 화를 내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분노는 개인의 가치관, 신념 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분노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올라오는지 주의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노를 억누르면 우울이 되고, 반대로 분노를 터뜨리면 시한폭탄이 되지만

분노에 귀기울이면 그 분노는 내가 놓치고 있던 뭔가를 일러줄 수 있다.

감정에 끄달리지 않고 감정을 다스리려면, 감정이 주는 메시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

   

가장 좋은 건 분노를 글로 적어보는 것이다.

나는 언제 화가 날까?

왜, 언제, 누구에게, 얼마나 자주, 얼마동안 화를 내는가?

생각해보고 틈날 때마다 적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분노를 느끼는 지점은 모두 다른데, 내 경우는 두 가지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1. 누군가 내 결정권을 침범할 때. 즉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거나 명령할 때

2. 진로를 방해할 때, 즉 내가 가는 길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모두 방해할 때  


나는 매우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데 '자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율'은 스스로 해내는 힘으로, 내 첫번째 가치관이다. 내가 언제 화나는지, 왜 화나는지를 살펴보면 이 자율권이 침해되었을 때 주로 화가 난다. 그것도 매우 큰 화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 수록, 그를 침범당했을 때 분노의 크기도 커진다. 따라서 분노를 잘 들여다보면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볼 수 있고 그를 파악하면 내 삶의 방향성도 설정할 수 있다.


 


Action: 내 안의 분노를 글로 써보기

분노는 내면의 시그널이다. 분노의 '발화점'과 '방향'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 힘을 '활용'할 수도 있다! 분노와 화는 내가 소중하게 느끼는 것과 연결돼 있다. 나는 언제, 왜 화가 나는지 적어보자.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적어보는 것도 좋고, 나열식으로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일단 내 분노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아야, 그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할건지가 가능해진다.



나는 언제 화가 나나?

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자주, 얼마동안 화가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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