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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실이하늘 Sep 01. 2024

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허영심

직장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들을 다루는 우연한 계기

출처 : Pixabay (geralt)



허영(虛榮)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이다. 또한 이러한 마음이나 감정이 움트는 것이 허영심(虛榮心)이다. 


허영심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영심이 발동하는 원인을 ‘인정 욕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의 ‘인정 욕구’는 더욱 그러하다. 단순하게 상사, 즉 인사고과자 내지 인사권자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 사이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마음이 과하다 보면 언행도 조금씩 과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인정 욕구’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상사나 직장 선배로 하여금 후배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조급한 마음에 자신의 허영심을 드러내고 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누군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참과 거짓을 섞어가며 과시하고, 주변 사람들의 칭송과 부러움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허영심이 가장 쉽게 발각되기 최적인 곳이 바로 직장이다.


직장 생활에서 주로 평가를 받는 항목을 매우 단출하게 정리해보면 ‘계획’과 ‘실행’ 그리고 ‘태도’와 ‘관계’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허영심이 타인의 평가나 평판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계획, 실행, 태도, 관계와 연결해보고자 한다. 


계획과 실행은 주로 업무상 평가항목이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수행)역량을 과하게 꾸밀 때가 있다. 채용 면접 때 특히 그러하고, 프로젝트의 담당자를 정할 때도 허영심을 부리는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 한편 태도와 관계는 업무 외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평가하는 항목이다. 가까이에서 자주 부딪히며 생활하는 직원의 경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대략 파악을 해버린다. 설령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여준 모습들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면 한 사람의 허영심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케팅팀은 얼마 전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팀원 3명이 동시에 퇴사했다. 그중 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씩씩거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태연한 사람은 당사자인 3인이었다.


그렇게 3인은 회사를 떠나고, 마케팅팀은 부랴부랴 채용을 서둘렀다. 다행스럽게 괜찮은 직원들을 생각보다 빨리 채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절반 이상이 물갈이가 되었으니 팀 분위기는 다소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케팅팀 팀장으로 입사한 구 팀장은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나이는 제법 있어서 그 속에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숨어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타 부서 직원들은 직전에 세 명이나 동시에 퇴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 팀장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찼다.


구 팀장은 텐션이 높은 사람이었다. 아마 MBTI도 ‘E’로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멀리서 마케팅팀을 바라보면 그다지 특이사항이 보이지는 않았다. 팀장은 새로 입사했고, 새로 입사한 팀원보다 기존 팀원이 수적으로 적었다. 그래서일까 고요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다. 하지만 입사 며칠 만에 안정이 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입사 후에 한 팀 한 팀 찾아가서 인사를 하던 구 팀장이 어느 날 연구개발팀 사 팀장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회의실에서 티타임을 갖자는 메시지였다.     


“사 팀장님, 안녕하세요. 마케팅팀 구 팀장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뭐, 예전에 제가 일하던 곳과 많은 부분이 달라서 놀라기는 했는데, 천천히 살펴보니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사 팀장님은 예전에 어느 회사를 다니셨어요?”

“네? 저는 이곳과 비즈니스 모델은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컸던 기업에 다니다 왔어요.”

“회사 이름은 뭐예요?”

“네? (이걸 굳이 왜 묻지?) 주식회사 ○○○요.”

“아, 네. (핸드폰으로 검색해본 후) 사 팀장님! 이 회사 상장회사네요? 오! 좋은 회사 다니셨네요. 그러면 마케팅 관련해서 잘 아시겠네요.”

“아니에요. 그냥 남들 아는 정도죠.”

“그래도 팀장 정도 되면 마케팅을 잘 알아야 하잖아요. 저도 예전 회사에서 다른 팀장들이 마케팅을 제대로 몰라서 정말 힘들었어요. 회의를 하면 반은 제가 강의를 하는 분위기였어요.”

“아, 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떤 분위기에요?”

“여기도 다른 회사와 비슷하죠. 팀장님들도 자기 분야에 대한 마케팅은 잘 수행하시는 것 같아요.”

“팀장님들은 마케팅 전반에 대해서 잘 아셔야 하는데……. 팀장님은 제가 오늘 한 번 쭉 설명을 드려볼까요?”

“아, 아니에요. 지금 바쁘기도 하고, 제가 연구개발팀이지만 경영학을 석사까지 공부해서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아, 네…….”

“오늘 말씀 잘 들었고, 팀장님과 마케팅팀을 응원할게요.”     



사 팀장이 아주 우아하게 구 팀장의 허영심을 누그러뜨렸다. 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부터 하는 사람일수록 허영심이 강해 보인다. 위 일화에서는 구 팀장이 새로 입사해서 자기 자신을 어필하는 가운데 다소 오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존 팀장들의 지원이 필요했을 테지만 마케팅 활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연구개발팀장을 불러 마케팅에 관해 설명을 하겠다고 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과했다. 누가 일하다 말고 티타임 제안에 응한 것도 모자라 마케팅 강의(?)를 듣고 있겠는가. 어쩌면 독자 중에는 사 팀장이 구 팀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 경영학 석사 입장에서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직장 생활은 그것 아니어도 바삐 돌아가는 정글이다.


허영심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상호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오로지 온전한 나로 살아야 한다. 회사에는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다. 어설프게 허영을 부리면 금방 발각되고, 필요 없이 창피만 당할 뿐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치를 떨 수도 있겠지만 직장이라는 곳의 야사들은 무시무시하다. 자칫하면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누구든 새로운 조직과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 그리고 경쟁 구조에서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마음도 탓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엄청난 스펙을 지닌 경쟁자가 온다고 해도 자신의 강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고, 상대가 나으면 깔끔하게 인정하면 된다. 나 또한 상대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성장해나가면 된다.


누구에게나 약간의 거품은 있을 수 있지만 감쪽같이 속이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믿어도 된다. 애써 부풀릴 필요 없고, 화려한 색으로 뒤덮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만약 허영심으로 얼룩지면 적어도 지금의 그곳에서는 끝내 그 무엇으로도 얼룩을 지워내기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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