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수치심

직장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들을 다루는 우연한 계기

by 토실이하늘
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수치심 Bucarama-TLM.png 출처 : Pixabay (Bucarama-TLM)



영리기업이든 비영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직장은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자의 역량을 펼치며 살아가는 곳이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슈에는 언제나 구성원인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드러나든 가려져 있든 구성원들 간의 애매모호한 상황은 언제든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에서는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한다. 누군가 경쟁을 부추기지 않아도 구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래도 저래도 급여는 나오고, 인상도 적당히 알아서 해준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하는 말이나 생각일 뿐 알게 모르게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다고 믿는다.


제아무리 경쟁이든 전쟁이든 늘 불행하게만 끝나지는 않지만 대개 승자와 패자로 나뉘게 된다. 직장에서 부서든 개인이든 이때 패자가 되면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중 대표적인 감정이 수치심(羞恥心)이다.


수치심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타인에게 비난이나 모욕을 받을 때 느끼는 감정,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가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될 때 느끼는 감정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에 대한 부정 평가를 포함하는 불쾌한 자의식 감정이라 표현하는데, 여느 부정적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발전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반드시 수치심이 타인을 향한 감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대다수가 타인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이겠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반성과 안타까움으로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심이 심각하게 악화되면 네다 세디기모르나니(Neda Sedighimornani)가 밝히듯이 우울증,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공포증, 심지어 일부 섭식장애와 같은 여러 심리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마케팅팀의 소 팀장은 본래 인사담당자였다. 연차도 쌓이고, 인사업무도 안정화되다 보니 얼마 전 새로 만든 스포츠마케팅의 팀장으로 보직 이동하여 근무 중이다. 팀원으로는 소 팀장보다 열 살 어린 설 과장이 있다. 사실 소 팀장은 인사팀에서 일할 때도 주변 구성원들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구성원들 간에 평범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꽤 적극적인데, 업무를 처리할 때는 답답함으로 돌변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소 팀장과 함께 일해야 하는 설 과장도 인사 발령 당시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루는 담당 임원이 소 팀장을 불렀다.

“소 팀장, 내가 지시한 건 잘 진행되고 있나?”

“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제까지 보고하라고 했었는데 중간에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지금 하고 있다고? 내가 언제까지 보고하라고 했는지 알고는 있나?”

“아, 네… 그게 다른 일이 많아서…….”

“뭐라고? 그걸 지금 이유라고 얘기하는 거야. 팀장이나 되는 사람이 업무도 하나 조정하지 못해서 이 중요한 보고를 누락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늦을 것 같으면 그 역시도 보고를 했어야지. 내가 이렇게 찾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 팀장보다 한참 어린 설 과장은 벌써 일주일 전에 보고했어. 도대체 팀장이 팀원만도 못해서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소 팀장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야. 예전 인사팀에 있을 때도 임원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더니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 보군.”

(담당 임원은 전화 수화기를 든다.)

“설 과장! 잠깐 내 방으로 와보세요.”

“소 팀장은 그만 돌아가요.”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의도했든 아니든 벗어날 길이 없다. 위 사례는 있을 법한 상황을 가상으로 만든 이야기이지만 직장 생활에서의 보고나 피드백은 그 자체가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고, 구성원들 누구에게나 마주하게 되는 기회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담당 임원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못하고서 황당한 이유를 내밀었으니 그냥 단순하게 넘어갈 문제는 아님이 분명하다. 해당 사안의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없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상사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저 운이 좋을 뿐 매번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버리는 편이 현명하다.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치심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 역시도 드물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방금 말했듯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수치심은 당사자의 몫으로만 남게 된다. 마음 한 구석에 누군가 나의 수치스러운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봐 신경이 쓰이겠지만 특별히 자신과 관계된 일이 아니었다면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어슴푸레한 추억 정도이거나 그마저도 지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장본인을 원망하는 감정도 들 수밖에 없다.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나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나에게 수치심을 준 그 사람 역시도 누군가로부터 수치심을 받았을 테고, 자격지심으로 남아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 깨끗이 씻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다루지 못하고, 토라진 사람처럼 시무룩하게 나날을 보내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잊기 힘들지만 잊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이유로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신은 수치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99.9%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타인에게 수치심을 준 적이 있는가. 또는 주위에 수치심을 느꼈던 동료가 어려움을 딛고 지금은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어떤 회복력도 거저 얻을 수는 없다. 당당하게 인정하고, 역시 당당하게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당신은 완벽한 사람인가. 그런데 왜 수치심에 허덕이고 있는가. 왜 감정에만 매몰되어 또 다른 수치심을 낳으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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