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태호 Jul 09. 2019

지나고 나면 아는 것들

3-6. 끝낼 수 없는 이야기

지나고 나면 아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내 유학 생활을 좌우했던 것이 '사람'이었지만,

그게 '학문' 이어야 했다는 것,


내가 겪은 일이 고난과 상처로 남지 않을 때는

그것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받아들이면서 부터 라는 것, 같은.




3-6. 끝낼 수 없는 이야기


같은 대학의 연구실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하라 교수와 와카츠키 교수의 연구실은 달랐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 방식이다. 교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목표였던 와카츠키 연구실과는 달리, 하라 연구실은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 평가)를 통과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것인데, 연구실 경험이라곤 와카츠키 연구실뿐이던 내게는 이것도 새로웠다.


하라 교수는 좋은 연구를 하도록 돕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뿐이고, 기본적으로는 학생 스스로가 연구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일정을 짜는 시스템은 나로 하여금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능하게 했지만, 내 연구에 대한 묵직한 책임감도 함께 부여해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하라 교수와의 랩 미팅은 그래서 와카츠키 교수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돌았다. 실험실 생활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짧은 시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번지르르 한 도표와 디자인으로 멋진 발표를 해도 정말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교수의 노련한 질문 몇 번에 밑천이 다 드러난다.


'무엇을 정리해 왔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아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날카로운 질문들 가운데, 자존심을 상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님을 넌지시 알려 주는 따듯함도 흐른다. 발표를 통해 자신의 바닥이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세워주려는 배려심을 느낀 학생은 거의 어김없이 훨씬 나은 성과를 들고 다음 발표 순서에 오른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학문 때문에 긴장한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 알았다. 학생의 궁극적인 멘토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내가 배우려는 대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잘 새겼다. 언젠가 내가 저런 위치가 되면, 나도 반드시 저렇게 하리라.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굳이 내가 하라 교수 같은 위치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녁이면 아이들 붙잡고 씨름하는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의 시간이 날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적인 환경의 연구실 생활과는 달리, 저녁의 학원 수업은 나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에너지가 하늘을 찌르는 중 1,2,3 아이들을 날마다 상대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부모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도 아니니, 말도 잘 안 듣고, 짓궂게 굴며 속도 썩인다.


하지만 부모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도 아니기에, 내가 '같은 편'이라는 걸 느끼고 나면 말 못 할 어려움, 고민, 상처들을 쉽게 털어놓기도 한다. 매일 길게는 3~4시간 가까이 마주하다 보니,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길다는 아이도 많았다.


마주하다 보면 아이의 성격, 장단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아직은 나가서 뛰어놀고 싶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픈 아이들이 학원 책상에 몇 시간을 앉아 공부하는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면, 이 어린 친구들이 불쌍해 보이고 안타까워 보인다. 그래서 학원 아르바이트 초반에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하며 토닥여 주는 삼촌 같고, 큰형 같은 선생님이 되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답이 아니란 걸 느낀 건, 그중 한 아이의 부모님과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였다. 말 잘 듣고 숙제도 잘해오는 아이라 특별히 아끼던 친구였다. 마침 학원장도 면담의 자리에 와 있었는데, 아이가 영특하다는 것은 부모님과 학원장에게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해 왔던 터라, 이 자리를 빌려 아이가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어린 친구가 부모님 앞에서 좀 더 분발해야 할 점을 조언하는 내 말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으로 들리면서 부터다. 갑자기 큰소리로 끼어들어 나를 공격 하기 시작한다.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사람은요~'라고 시작한 이 친구의 이야기는 수업이 재미가 없고 숙제가 똑같다는 등, 아무튼 형편없는 학원 강사라는 거였다. 


평소에 보지 못한 모습인 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다. 가만히 보고만 있는 부모를 등에 업은 이 아이의 독설 앞에서 난 순식간에 잘 가르치지도 못하고 준비도 안 하는 학원 선생이 되어 버렸다. 말문이 막힌 나를 두고 결국 학원장이 사태를 수습한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아이와 부모님을 돌려보낸 후 학원장과 둘이 남았을 때, 어찌나 창피하고 난감하던지..  


도대체 난 아이들에게 뭘 바란 거지? 이를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어쭙잖은 형, 삼촌 역할이 아니라, 성적 올리는 학원 선생님 역할이라는 것. 아이들로 하여금 영어 문법과 단어, 독해에 집중하게 해야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 당연한 것들을 초보 학원 강사는 그제야 알게 된다.


이때를 기해 아이들에게 좀 더 무서운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모든 수업 자료를 좀 더 신경 써서 준비했고 매일 시험 보고 채점해서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반드시 벌을 주었다. 매를 들기도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호통 치는 것도 다반사였다.


다 큰 어른이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 앞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날마다 호통치고 얼르는 모습이 때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 '무서운 선생님'에게 부모님들이 학생들을 점점 더 많이 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칠판을 탕탕 두드려 가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것으로 일본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와 가족을 위해.



지금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활약하는 이 친구들 중 몇 명과는 지금도 연락을 한다. 후에 석사, 박사생도 지도하게 되지만, 온갖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진심을 담아 가르친 이 아이들이 훨씬 각별하게 느껴진다.




학원 월급은 예상대로 우리 식구들을 일본에서 다시 뭉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도쿄의 비싼 생활비 정도를 벌 수 있을 뿐, 집은 무슨 돈으로, 어디서 구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일단 무사히 일본으로 건너왔다. 집도, 가구도, 생활필수품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가족이 올 수 있던 건, 교회의 어느 가정이 3개월간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온다며, 월세를 대신 내고 집을 잠시 쓰라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기쁨으로 식구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3개월간 어떻게 해서든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모든 채널을 열어 놓고 가능성을 알아보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도쿄 국제교류관이다. 


도쿄 국제교류관은 유명한 관광지인 오다이바에 위치해 있다. 후지 TV 본사가 있고, 레인보우 브리지 곁에 펼쳐진 해변 위로 유리카모메 열차가 지나다니는, 아름다운 관광지 오다이바의 한가운데에 외국인 유학생, 연구원들만 들어와 살 수 있는 초현대식 건물이 있다. 일본의 정부 자금으로 운영되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 도쿄 국제교류관에 지원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지원 자격이 되는지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도쿄 의과 치과대학교 학생은 지원자격이 되었다. 신청서를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초조하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운다. 반드시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할 일들을 해 나갔다.


입주 신청에 대한 결과가 이메일로 날아온 건, 집주인 가정이 돌아오기 2주쯤 전이다.


결과는,

.

.

.

불합격.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입주가 안된다는 통보뿐이다. 믿었던 도쿄 국제교류관의 입주가 안되고 나니, 앞이 캄캄했다. 이제 시간도 없는데 어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싼 집들의 상황을 훑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모든 것을 했다. 이때 할 일 중 하나로 써 놓은 것 중에는 도쿄 국제교류관에 불합격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있었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혹시 서류 절차 상의 오류는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서류 미비'로 인해 겪은 온갖 고생이 낳은 결과다.


그래서 불합격의 이유를 알아보려던 어느 날, 이것이 보기보다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합격 통보를 한 이메일은 발신 전용이고, 자동응답으로 연결되는 전화로는 아무와도 통화할 수가 없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오다이바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찾아간다고 해서 특별히 뭘 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는 다짐의 연장선이었다.


햇살이 밝던 어느 날, 유리카모메 열차를 타고, 관광객들로 가득한 오다이바에 내렸다. 웅장한 규모의 국제교류관에 도착해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부터 입장이 불가하다.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한참을 서성이던 중, 누군가 나와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건다. 여기 지원한 사람인데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고 했다. 잠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누군가를 부르러 들어간다. 한참 있다가 입주 심사를 담당하는 부서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나오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니 넓은 사무실이 나왔다. 한가운데쯤 있는 테이블에 앉혀 놓고 무슨 일로 왔는지를 다시 묻는다. 이에 얼마 전 입주 신청을 했는데 불합격된 상황을 설명하고, 왜 떨어졌는지를 알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아마도 나처럼 떨어진 이유를 묻기 위해 여기까지 직접 찾아오는 지원자는 처음이었나 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뭇머뭇거린다.


인적사항을 묻더니 일단 내 지원서를 확인해 보겠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한참 있다 다시 온 이 사람, 이제야 내가 입주하지 못하는 이유를 듣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를 통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내가 일본어를 배우고 사용한지도 5-6년이 되어가던 때다. 일본어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못 알아들을 리는 없다. 잠시 후, 이 사람이 뭔가 말을 횡설수설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제야 이 입주 담당자란 사람이 나로 인해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이 든다. 꽤 넓은 사무실에 많은 직원들이 있었는데, 낮은 칸막이 뒤로 모두가 침묵 속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상황인 것도 눈에 들어온다.


계속해서 이야기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할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당신에게 따지거나 항의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저 서류상의 문제가 없는지만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고, 무언가 미비하다면, 다시 지원할 테니 차후에라도 알려 달라고 했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내가 겪었던 일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국비 장학생으로 왔는데, 서류가 제때에 제출되지 않아서 장학생 자격을 상실한 이야기, 그 이후 한국에 돌아가 여러 준비를 다시 해서 돌아왔는데, 이를 통해 서류 절차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야기 등등.


"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무척 필요하지만, 되기를 소망할 뿐,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아요.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시간 내어 주어서 고마워요."


보이지 않는 대중을 향해 이야기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말을 마무리 한 채 자리에 일어났다.  


그렇게 허탈하게 돌아온 후 국제 교류관은 기억에서 잠시 잊고, 다시 여러 옵션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드디어 집주인 가정이 돌아오기 1주일 전이 되었다. 여전히 이사 갈 집을 못 구한 채 가슴이 쪼그라드는 기분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국제교류관이란다.


전화기 너머로 가슴이 뻥 뚫리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느 연구원 가족의 입주가 본인 사정으로 취소되어, 불합격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재심사를 했는데, 우리 가족이 선택되었으니 다음 주부터 국제교류관에 입주하라는 소식이었다.

 

들어오라는 날짜가 기가 막히게도 우리가 머무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 바로 그날이다. 길에서 너무 기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함께 기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어쩌면,

같은 이야기를 또 한 거다. 두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자.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자.


다만, 오다이바에 입주하라는 전화를 받던 그날,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내 삶의 궤를 같이 하여 함께 넓어지고, 여러 고난을 겪으며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서류 미비'로 인한 장학금 자격 상실이라는 황당한 경험은 나로 하여금 말로 다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을 겪게 했지만, 이 일이 없었다면 국제교류관에 찾아가서 심사관에게 이유를 묻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찾아간 것이 정말로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 그건 알 수도 없고 이것을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본 사회와 시스템을 좀 더 겪어본 지금, 이때의 방문이 무언가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이때의 방문으로 내가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 우리 식구들이 안정된 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데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어졌다.


과거의 고난과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최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필요한 선택을 하게 했다. 고난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훗날 맞이할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오다이바에 위치한 도쿄 국제교류관 전경


가족이 다시 일본에서 살기 시작한 지 3개월 후,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도쿄 최고의 관광지에 위치한 도쿄 국제교류관에 입소하게 된다. 오다이바에서의 삶은 좋은 인연과 만남을 가져왔고,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었으며 안전한 삶과 편안한 공부의 기반이 되었다.


유학 생활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때까지 겪었던 것 모든 상황들보다 더 센 것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잠시 쉬어가는 시기였다.

 

내 힘으로 일어서고, 자아를 찾고, 어려움을 극복해도 여전히 고난은 찾아온다. 

성장은 평생토록 계속된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 수 없는 이유이다.






이전 16화 확실히 할 수 있는 것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답이 있다면, 알 수 있는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