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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명 Nov 01. 2020

단편소설 한 권 분량의 꿈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통해서도 충만감은 느낄 수 있다

 어떤 질문은 마주하자 마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보통 그 질문에 대한 내 마음이 너무 진심일 경우에 그렇다. 사실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대개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질문. 취준생이라면 수없이 대답해보았을 그 질문. 그저 지원동기였다. 

내 오랜 꿈은 예능pd이다. ‘해당 직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계기는 정말 감상적이다. 어떤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이성적일 수도 있을까? 스물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오래된 사진처럼 남아있는 한 장면이 나에게 있어서는 ‘해당 직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12살의 나는 무척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때는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건 태어나 처음 느껴보았던 절망이라는 감정이었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하염없이 울었고 그때 그냥 우연찮게 tv가 틀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tv에서는 무한도전이 나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드립이 오갔고 나는 그렇게 서럽게 울면서도 그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쳐다보다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서럽게 울다가 웃음이 난 게 자존심이 상해서 괜히 더 성질을 부리고 싶었을 정도로 나는 정말 빵 터져서 웃었다. 이게 나한테는 계기였다. 그때의 그 감정을 잊지 못해서 나는 여태 예능 pd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꿈’이 아닌 ‘해당 직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묻는 곳에 이런 날 것의 마음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날 것의 마음을 정돈해서 표현하려 했다. 그렇게 나의 지원 동기가 다듬어졌다. 나는 누군가의 한 순간에, 아주 작은 찰나에 웃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 날 이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에 예능pd를 꿈꾸게 되었다. 예능 pd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렇게 지극히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나버린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데 필요했던 것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였다. ‘꿈’이 아닌 ‘직무’로서의 예능pd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나는 나의 자질과 역량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다. 내가 이 꿈에 너무 진심이라서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몇 주 전 신입 pd를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공고가 안 뜰 거라고 생각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공고가 반가웠고 무서웠다.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꿈이 이제야 진짜 깨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가웠고 어쩌면 영원히 잠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꿈을 꾸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꾸었던 꿈이어서 그런지 그 꿈이 실체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꿈이었기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예능 pd는 내 안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꿈이었다.    


 나는 때때로 내가 왜 예능 pd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때그때의 이유들을 나의 작은 아이폰 메모장에 써내려 가곤 했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때로 나에 대한 의심이었고 확인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론 꿈에 대한 의지가 더욱 확고해져 상기되기도 했고 때론 더 큰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써내려 간 시간들에서 깨어날 때였다. 그렇게 나는 예능pd가 되고자 했던 나의 수많은 이유들, 지원동기,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의 기획안 등 내가 그동안 예능 pd를 꿈꾸며 끄적여났던 메모들을 한 데 모아보았다. 그 분량이 A4 15장이었다.


 단편소설 한 권의 분량이었다. 꿈을 위해 고민했던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 거기에 쌓여 있었다. 내 인생이 한 권의 장편 소설이라면 예능 pd라는 꿈을 꿨던 그 시간이 단편소설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 내 인생에서 기록되어왔던 것이다. 이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꿈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실과 별개로 A4 15장이라는 실질적인 수치를 마주하자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도 단편소설 한 권의 분량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이 꿈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어느 날 나에게 마저 잊혀 지더라도 적어도 이 A4 15장에 담겨져 있는 열정은 영원히 여기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실체가 단 하나라도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단편 소설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이야기도 이루어진 꿈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의 내용만으로 단편 소설 한 권의 분량을 만들어냈다는 데서 그 흔한 성취감이 아닌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내적인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애썼다. 그럼 됐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 꿈을 통해서 단 한 번도 성취감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이 꿈 덕에 충만감은 느끼며 살 수 있었다. 이루어진 꿈을 통해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통해서도 충만감은 느낄 수 있다. 

살아가면서 성취감보다 더 흔히 느낄 수 없는 것이 충만감이며, 삶의 풍요도를 결정해주는 것은

많은 순간 성취감보다는 충만감이다. 그렇기에 비록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더라도 어떤 꿈을 품고

사는 동안 충만감을 느꼈다면, 그것 만으로도 그 꿈은 내 삶에 충분한 가치를 가져다준 것이다.

그 꿈은 이미 충분히 고마운 꿈인 것이다. 나는 예능pd라는 꿈 덕에 많은 순간 충만감을 느끼며 

살 수 있었다. 그거면 됐다. 이제야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적어도 나는 살면서 단편 소설 한 권 분량의 꿈을 꿔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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