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면서_01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군대 간 오빠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가 14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편지에는 나를 향한 그리움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오빠는 내가 보고 싶다며 오빠네 집으로 오라 했다. 그 편지를 받고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 짐작이나 가는가?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언제 내쳐지나 맘 졸이며 빌붙어 살던 내게 드디어 오라고 하는 곳이 생긴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에 큰어머니에게 떠나겠다 말을 남겼다. 생전 큰어머니가 나로 인해 기뻐하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그 날 처음으로 보았다. 큰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잘됐다고 소리쳤다.
이튿날, 큰어머니는 내게 처음으로 선물을 안겨주었다. 인조 천으로 된 짧은 옷과 어깨부분이 달린 치마. 그리고 신발 한 켤레.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없어선지 그 때 받은 신발과 옷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오빠네로 떠나는 당일, 큰어머니는 차비 외에 여비로 돈 10원도 주었다.
1969년 8월,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곳은 황해남도 강령이었고 내가 가야할 오빠가 있는 곳은 함경남도 북청이었다. 기차를 타고 밤새 이동을 하였다. 이튿날 아침 7시, 어슴푸레 아침이 밝아올 때 즈음 북청역에 내렸다. 북청역에서 내린 다음부터는 길을 몰랐기에 사람들한테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 중평리 42번 찾자면 어데 가야 되나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요상했다. 내 말투를 듣고 낄낄거리며 지나가는 것이다. 알고보니 내가 평생 살아온 곳 황해남도 강령의 말투와 이 곳 함경남도 북청의 말투가 서로 달랐던 거였다.
북은 이 곳과 달라 여행의 자유가 없다. 아주 특별한 지금과 같은 경우에만 통행증을 발급해 이동이 가능하다. 그래서 각 지역의 말투가 이 곳 대한민국보다 낯설었던 것이다. 별 수 있겠는가. 낄낄 웃는 사람들 중 그나마 덜 낄낄대는 사람을 붙잡아 길을 물으며 오빠네 집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던 중 오는 날이 장날 이라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괄시 당하던 와중에 비 까지 오니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창문이 열려있는 어느 집으로 비를 피하는 겸 해서 처마 밑으로 달려갔다.
창문 안으로는 집 안에서 베를 짜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가 보였다. 그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야겠다 싶었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중평리 42번 박철남네 집이 어데 있나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도 깔깔대며 웃기만 하고 길은 알려줄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게 아닌가. 순간 반사적으로 경기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웃기는커녕 박수를 짝 치더니 놀라 되묻는 거다.
“그 먼데서 찾아왔는가? 온다더니 진짜 왔네!”
그러고서는 대번 뒤돌아서 어딘가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제대로 찾기는 한 건지 초조한 마음으로 아주머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아주머니는 오빠와 함께 내가 있는 창가로 돌아왔다. 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오빠는 오빠였다. 나는 대번에 오빠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서있는 창가 가까이로 오빠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7년만의 재회였다.
나는 마침내 친오빠를 만났으니 그 다음 삶은 순탄할거라 예측했더랬다. 그렇지만 부모 복 없는 이가 형제 복이라고 있겠는가. 오빠를 찾아주었던 베 짜던 아주머니는 알고보니 오빠네 장모였고, 처음 몇 달은 친절하였으나 곧 이어 식량을 축낸다며 홀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빠는 결혼한 상태였는데, 오빠의 아내(형님)은 내가 어떤 이유에서든 음식을 먹고 있으면 잔소리를 늘어놓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형님이 해산을 할 적이면 밥과 아기 기저귀 세탁, 옷 세탁 등을 도맡아 해야 했다. 이래서야 큰집에서 식모살이 하며 더부살이 하던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차츰 다른 살 길을 강구해야 했다.
오빠네서 일은 일대로 하고 밥도 못 얻어먹을 바에야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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