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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Oct 08. 2018

나의 우주가 펼쳐질 가능성에 대해

김수진 개인전 <Figverse(fig+universe)>

본 전시회는 10월 4일~10월 10일까지 유스퀘어 터미널 2층 금호갤러리에 전시됩니다.


무화과가 끝물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 무화과는 흔한 과일이었다. 덕분에 파릇하고 억센 잎사귀가 손톱만 한 종기 같은 무화과를 달고 나올 때부터 그것이 자라는 과정을 쭉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떤 날엔 익다 못해 매달린 채 터져버린 무화과를 따다 쨈을 만들어 놓고 다음 날 먹을 때면 톡톡 터지는 씨와 은은한 단맛 때문에 식빵 한 줄을 어느새 다 먹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무화과에 우주가 담겨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마치 영화 <맨 인 블랙>처럼, <매트릭스>처럼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하기도 한다는 말인가. 김수진 작가는 나에게 흔한 과일이었던 무화과에게서 우주를 본 모양이다. 속부터 빨갛게 익어가고 꽃을 안에서 피우는 고혹적이고 은밀한 과일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김수진 작가의 'Figverse-각자의 생'

모든 사물에는 각자의 우주가 있다.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생과 사, 성장과 순환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가 된다. 또 사람 한 명에게 관여된 사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사람은 스스로 우주가 된다. 무화과의 여러 가지 모습, 푸른 청무화과와 빨갛게 익은 무화과, 너무 익어 꽃처럼 터져버린 무화과, 존재하지 않는 색의 무화과까지 무화과의 삶을 모아놓은 것만 같다. 액자에 박힌 무화과의 순간순간은 마치 집에 있는 앨범 같다. 찰나의 생을 기록해 놓은 아카이브처럼 펼쳐진 무화과는 그것에 담긴 우주를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김수진 작가의 'Figverse'

'Figverse'는 말 그대로 우주 속에 펼쳐진 무화과나무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많은 별이 떠 있는 우주엔 고래, 사슴, 코끼리 같은 것도 무화과와 같이 존재한다. 아이도 있고 새도 있는 와중에 단연 주인공은 무화과다. 캔버스의 위에서부터 뻗어 나온 무화과나무는 우주를 뒤덮으며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어머니처럼 감싸는 무화과는 본인의 우주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보호한다. 무화과나무에 수많은 열매 하나마다 새로운 우주가 다시금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 뒤에 있는 수많은 별이 사실은 다른 무화과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왼쪽부터 김수진 작가의 '삶-여행', '삶-하루'
왼쪽부터 김수진 작가의 'Figverse', '삶-온도', '삶-계절', 삶'순환'

내가 살아가면서 여행을 가고, 하루를 보내고, 계절마다 기온이 바뀌는 걸 느끼고 그것들이 반복될 때, 나의 우주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삿포로를 여행했을 때 첫사랑을 다시금 만나는 것 같았고 환절기에 걸린 감기에 좀 더 두껍게 옷을 껴입게 됐다.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습관처럼 됐을 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쏟아내는 법을 알게 됐다.


무화과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각각 존재하는 하나의 우주라면 그것들은 모두 삶을 살아간다. 삶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고 순간이 모여서 만들어낸 긴 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긴 선상에 있는 무화과의 단편적인 모습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무화과의 여행은 좀벌과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무화과의 온도와 계절은 그것의 몸에서 바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순환 또한 순간에 담기기에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무화과의 하루는 무화과만이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무화과가 은밀한 비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 부분을 잡아내 도화지 위에 그려낸 작가의 기량이 대단할 따름이다.


왼쪽부터 김수진 작가의 'Figverse', '어느날'

한 무화과나무에서 여러 색의 나뭇잎이 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작가는 무화과의 4계절을 하나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무화과는 단 하루도 같지 않다. 마치 세잔이 매일매일 같은 장소에 가서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낸 것처럼 무화과의 매일매일을 모아놓은 듯한 작품은 무화과가 꿈꾸는 이상 세계를 지향한다.


마지막 작품까지 돌아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Figverse'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독립된 우주, 그 속에서 자신의 이상 세계를 펼쳐나가는 무화과, 그것이 꼭 무화과가 아니더라도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자극이 된다. 우리의 삶은 매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자신만의 우주 속에서 순환하고 계절을 보내고 합쳐지고 분리되는 것들을 반복하고 새롭게 이어나가는 것, 이 사실이 나를 살게 하고 앞으로 나가진 못해도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김수진 작가님의 전시회는 제가 이번 년에 본 전시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작은 규모의 전시지만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노련한 작품들을 선보여주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는 전시지만 꼭 한번 와서 관람하길 바랍니다. 저는 다음번에도 김수진 작가님의 전시가 있다면 찾아가서 직접 작가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무화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에 담긴 작가님의 세계관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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