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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Oct 02.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5#<서체적인 수묵추상화>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

강원도의 돌.


마종기,「강원도의 돌」 일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난 수묵화에 관련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 내가 쓰는 글이 늘 그렇듯이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게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의 확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 그뿐이다.


어느덧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5부작 중 마지막 글이다. 항상 한번 시작했던 글을 마무리 짓기 힘들어했던 나로선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시는 본래 노래로써 부르던 장르다. 시의 운율은 노래의 멜로디와 맞도록 규칙적으로 짜여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둘은 각자의 분야로 분화되었지만 가끔 우리가 노래를 들으며 '시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둘이 붙어있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화에도 이와 마찬가지의 개념이 있다. 그림과 서체, 이 둘은 모두 붓으로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둘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에서 나왔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수묵화 자체를 서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맞는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칸딘스키가 모든 사물을 단순화하다 점, 선, 면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혹은 인상주의에 반발한 추상화가들의 왜곡된 사물들을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왼쪽부터 이기영 작가의 'Black Flower', 이철량 작가의 'City'

'서체적'이라고 한다면 그림 자체가 하나의 단어, 문장, 문단, 글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작품 속의 모든 요소들은 글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우리가 읽기 힘든, 읽을 수 없는 언어들로 쓰여 있을 뿐이다. 나는 'Black Flower'를 보며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떠올렸다. 멕시코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을 저 그림에서 읽어냈다. 누군가는 빅뱅과 같은 꽃의 탄생, 터짐을 읽어낼 수도 있겠고 시들면서 검게 변하는 꽃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철량 작가의 'City'는 마치 현대의 성장 소설을 압축해 놓은 것만 같았다. 혼자 서 있는 사람 앞에 있는 거대한 사회, 거대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회를 자세히 보면 수많은 사람이 들어가 있다.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 앞의 개인은 너무나 작게 보이지만 결국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개개인이라는 원리 속에서 저 가냘픈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대한 소설이 눈앞에 그려졌다.


김선형 작가의 'GARDENBLUE', 정명희 작가의 '그 여름날의 달빛 3', '그 여름날의 달빛 4', '그 여름날의 달빛 2'

'서체적'이란 말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지극히 단순화된 선 속에 의미의 함축을 이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극히 시와 비슷한 과정이다. 긴 글을 줄이고 지극히 평범한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구절로 바꿔내는 일은 수묵의 추상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여기서는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작품을 읽어나갔다.


 'GARDENBLUE'에서 파란색은 검은색과 같이 난삽하게 사용된다. 파란색은 경우에 따라 '우울'을 뜻한다. 나는 이 작품의 파랑을 '우울'이라고 읽었다. 정원 위에 흐드러지게 핀 파랗고 검은 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상황이 난삽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은 마치 80년대의 '해체시'나 요즘의 '미래시' 등을 떠올리게 한다. 해석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가 이 그림의 주제를 '우울'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 여름날의 달빛' 연작은 서정시를 읽는 듯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붉은 계열의 색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다와 파란 하늘, 청바지와 같은 푸른 계열의 색들도 많이 떠오른다. 특히나 밤이 되면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서며 보는 어스름한 저녁과 달에 기댄 새벽녘을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고 차분하게 만드는 그 시간의 감정을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다면 꼭 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전시가 모두 끝났습니다. 꽤나 수준 높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던 건 물론 많은 영감을 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적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엔날레보다 더 좋은 전시들을 광주, 전남에서 마실 가듯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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