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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Sep 29.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4#<동양 3국의 수묵 해석>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중국의 수묵은 같거나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표현된다. 4, 5 전시실에선 세 나라의 수묵화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었다.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작가의 개성과 더해진,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도 꽤나 눈에 띄었다.


색의 배합, 붓의 쓰임 등 작가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각 나라 고유의 종교, 신화, 전설, 철학 등과 만난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와 국가를 보기 전에 어느 국가일지 지레짐작하는 놀이를 혼자 하기도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전시에선 중국, 대만을 모두 중국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글에선 중국, 대만으로 구분된 작가와 그 나라를 연관 지어 서술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할 때는 중국이라고 통칭한다.


대만 작가 莊連東(Chuang Lien Tung)의 작품

대만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특히나 절이 많다는 것이었다. 시장 골목을 가다가도 절이 있었고 도로변에 유명한 절이 있기도 했다. 불교를 기반으로 도교 및 민간신앙이 더해진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위 작가의 작품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특징이 잘 나타났다. 우리도 흔히 알고 있는 연꽃과 부처의 모습, 다만 수묵이라고 믿기 어려운 정교함이 돋보였다.


왼쪽부터 李宗仁(Lee Tsung Jen) 작가의 '冬韻', 李振明(Lee Cheng Ming) 작가의 'Wing Flying Sandbar'

물론 대만이 그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종교적인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두 작품을 보면 바로 납득이 된다. 왼쪽의 작품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1 전시실의 '자연의 서정'에 가까웠고 오른쪽의 경우는 3 전시실에서 봤던 '기운의 가시화'에 가까웠다.

작품의 제목 'wind flying sandbar'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고 그 안에 있는 새와 게 등은 분해되고 재배열되어 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긴 애매해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만 같은 이 작품은 '나라'로만 묶어내자면 위의 작품과 같이 엮긴 힘들었다.


왼쪽부터 Kira Yoshie의 '件 (Kudan)', 'Euryale'

일본은 지역마다 여러 신들을 믿고 많은 전설과 함께 민담이 존재한다. 곳곳에 사당이 있고 역사적인 인물이 신이 되기도 하며 사물에 깃들어 있다는 정령을 믿기도 한다. 이런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나온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신화나 전설 등은 한 나라 문화의 원천적인 재료로 자주 사용된다. 자주 사용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한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 산업이나 예술 작품에서는 이런 점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수묵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활용 살펴보기 위해서 일본 작가의 작품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Kudan'은 일본에서 예부터 알려져 온 괴물로, 사람과 소가 합쳐진 모양새의 요괴다. 위의 설명처럼 일본의 전통적인 전설, 민담 등이 현대 예술 작품의 원척적 재료로 사용되어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예로 드라마 '도깨비'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이야기 소재를 현대적으로 잘 변형했다고 할 수 있다.


'Euryale'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한 메두사의 자매다. 메두사를 포함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예술 작품에서 표현되고 인용되고 변형되어 왔다. 가장 유명한 메두사가 아닌 그녀의 자매 에우리알레를 작품의 소재로 쓴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중요한 것은 신화의 계속적인 전승과 변형에 있을 것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Kira Yoshie 작가의 'Nekomata', 'Ghost of Camellia', 'Amanozako', 'Enku'

위의 작품들도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신화나 전설이 작품의 주제가 된다. 다른 나라의 작품을 비교해 전시해놓았을 때 관람객은 단순히 그 차이점만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차이점을 모방과 영감의 소재로 삼아 확장시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꼭 예술분야에 한정되지 않아도 괜찮다. 각 지역마다 퍼져있는 이야기를 모으고 듣는 것만 하더라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왼쪽부터 李广平( Li Guangping) 작가의 '寒山', 樊枫(Fan Feng) 작가의 'The Kingdom of New Bikes NO.3-4'

중국은 넓은 땅만큼이나 그 작품의 특성을 단일화하기 어렵다. 작품들 사이에서 이것들을 관통하는 중심을 찾으려다가도 엇나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오히려 중국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한 작가마다 하나의 새로운 나라,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해버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물론 그것은 중국을 제외한 여타 나라들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적어도 3국을 비교 분석하는 전시 공간에선 중국의 작품이 훨씬 그랬다는 말이다. 위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일상의 소재인 자전거, 이는 중국에선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기에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작품 속으로 가져오면서 중국의 정체성을 '자전거'로 압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작품의 제목 또한 '새로운 자전거의 왕국'으로 지은만큼 작가는 작품에서 '중국=자전거'로 규정하고 있다.


여러 개의 삽화가 나열된 Li Guangping의 작품은 마치 신윤복을 떠올리게 한다. 외설과 예술의 사이, 일상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아니 드러내기 힘든 소재를 끄집어내는 기술이 좋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고양이, 감, 그릇, 생선 사이사이에 나열된 여성의 나체는 단독적으로 존재했을 때 야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지점을 허물고 단순히 일상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3개 나라의 작품들을 전시된 것들로만 비교하고 차이점을 느끼는 대로 나열해 봤다. 이보다 수많은 작품을 비교해야 그것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을 테지만 간략하게나마 비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나 또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서 한국의 작품을 넣지 않은 것은 이미 다른 전시실에서 보아온 많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과 비교하더라도 충분히 3국의 차이를 알 수 있기에 한국의 작품은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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