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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Sep 27.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3#<기운의 가시화>

본래 동양화는 보이는 형의 재현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 느끼고 포착할 수 있는 기운의 가시화에 있었다.

실존하는 사물 너머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믿음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집단과 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여러 갈래로 파생되어 왔다. 플라톤의 이데아론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종교에 대한 믿음까지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회화세계에서도 추상화는 사물의 재현을 넘어서서 사물의 이면까지도 살피고자 했다. 우리의 회화 체계에선 이를 '기운', '기' 등으로 부르며 사물에 담긴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했고 그 결과물로써 몇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왼쪽부터 김현숙 작가의 '스스로 피어나다', 송수련 작가의 '내적시선'

3 전시실까지 오게 되면 과연 내가 같은 전시회를 온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수묵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스스로 피어나다'를 보면 사물의 형태는 없다. 어떤 식물의 모습인 것 같으나 그 정체를 짐작하긴 힘들다. 사실 이 작품에서 저 식물이 무엇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에 담긴 '스스로 피어남' 그 자체가 중요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는 나무와 풀과 꽃 따위를 원래 거기에 있던 결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분명 우리가 안 보는 새 스스로 자라나 결과로써 눈 앞에 있는 그것을 그려낼 때 과연 우리는 그것의 순간만을 가지고 그 나무를, 꽃을, 풀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을까. 


송수련 작가의 '내적시선' 또한 이와 마찬가지의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작품에서 중요한 건 그려낸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임진성의 '부유하는 몽유금강', 장안순의 '갈대-재즈(Jazz)'

위의 작품들은 모두 풍경이 묘사돼 있다. 이전에 기운의 표현을 위해 형태를 과감히 무시한 작품들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갈래의 작품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연결고리는 전시실의 주제인 '기운의 가시화'에 있을 것이다.


'부유하는 몽유금강'과 '갈대-재즈(Jazz)'는 모두 풍경이 과장되어 있다. 작가는 사물에 담긴 기운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과장을 택했는데 과장은 작품과 현실을 구분하는 기능을 한다. 노란색으로 황홀경처럼 펼쳐진 산맥, 날아다니는 새와 바람에 춤추는 갈대는 현실을 뛰어넘어 존재하지 않는 작가의 세계, 작가의 시선이다.

이렇게 현실과 작품 속 현실이 구분될 때 관람객은 객관적인 시선을 얻게 된다. 과장된 현실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사이의 모순은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게 한다. 공통점은 보통 현실과 일치하고 남은 차이점이 현실에서 확대된 기운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를 어느 정도까지 인지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작품의 깊이가 서로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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