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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Oct 16. 2018

나의 은유는 우주로 향한다

고희자, 박순천 초대전 <The Metaphor of Space>

언제부터 우리는 비유를 사용했던 걸까? 빗대어 말하기, 돌려 말하기 등은 모두 비유를 이르는 말이다. 어떻게 보냐에 따라 고상한 척, 잘난 척, 감상적인 척 등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번개를 보며 하늘의 신을 생각했다 등의 비유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경외롭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먼 과거에서 온 인간을 한 명 데려다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고희자 작가의 '공작새', '햇살'

비유를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물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 그것을 엮는 것이다. 두 사물이 어느 정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수월하겠지만 아예 반대의 경우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의 작품과 제목은 비슷한 것을 가지고 둘을 연상시키는 기본적인 비유의 방법을 따른다. 마치 인류 전체의 큰 비유 중 하나인 '신화'와 비슷하다. 파랗고 노랗고 붉은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닮은 공작새, 노란 꽃이 넓게 펼쳐진 모습을 닮은 햇살은 지금의 우리뿐 아니라 먼 과거의 누구를 데려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는 때론 시대를 초월하기도 한다. 자연물을 이용한 비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때 이런 자연을 노래한 시가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그래서 작가가 우주의 비유의 대상을 꽃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에 빗대어질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 다양한 색채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변주가 가능한 꽃은 비유에 특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희자 작가의 '들꽃 연회' / 작가의 우주는 꽃처럼 화려하다

박순천 작가의 'Fashion Trend'18 V/IV', 'Fashion Trend'18 II'

고희자 작가의 우주가 공유된 우주라면 박순천 작가의 우주는 독립된 우주다. 동굴 속에서 홀로 번개를 견디며 두려움을 느꼈을 고대인의 상상력을 옮겨 놓은 것 같다. 작품 속 사람들은 원색 속에서 지나치게 마른 모습을 하고 있다. Fashion Trend는 제목을 비꼬듯 날카로운 칼로 깎아낸 몸을 그렸다. 분명 우리는 이런 비유법을 배운 적 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과장'이다. 그것이 내는 효과는 분명하다. 대상에 대한 경외거나 풍자다. 작품은 물론 후자처럼 보인다.


박순천 작가의 하모니 II, 리듬 I

뒤로 넘어올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짙어진다. 팝아트처럼 디지털 이미지를 반복해서 배열한 작품들은 위의 풍자에서 더 나아가 전위를 꿈꾼다. 위에서 밝혔듯 독립된 우주를 꿈꾸는 작가의 비유 속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왜곡되고 뒤틀려 있다. 혹은 정반대로 너무 가지런해서 이질감이 든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고대인의 번개처럼 작품에선 두려움이 느껴진다. 세상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의 끝에서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우주를 펼친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어 진다.



"Metaphor of Space"


나의 우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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