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미디어아트 특별전 <당신속의 낙원_MEDIA YOUTOPIA>
광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라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도 작년 이맘때 참여했던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을 거다. 내가 봤던 전시의 기억만 더듬어 봐도 미디어아트는 이제 꽤나 많은 곳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나는 미디어아트를 좋아한다. 연속된 영상과 주변의 사물의 반응해 만들어지는 의미 작용, 그걸 받아들이는 나조차도 작품의 일부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녀온 <당신속의 낙원_MEDIA YOUTOPIA>는 그런 미디어아트의 특성 때문에 하나의 큰 주제를 갖는 게 과연 맞을까란 생각을 했다. 실제로 단일된 주제 안에서 그것들을 규정하기엔 9개의 작품 모두가 개성 있고 독창적이었기에 그중 가장 좋았던 작품 정연두 작가의 '높은 굽은 신은 소녀(A girl in tall shoes)'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높은 굽을 신은 소녀'는 1958년 23살 때 홍콩에 밀입국한 문 씨 할머니와 2017년을 살아가는 키 작은 소녀들 간의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2개의 채널을 통해 보이는 이 대화는 할머니의 경우 자수로 소녀들의 경우 인터뷰로 진행된다. 공통분모라곤 키가 작다는 것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전시의 목적이다.
자수로 진행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당신의 연륜처럼 느리고 반듯하게 써내려 진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몇몇 에피소드가 자수의 내용이지만 투박하고 주름진 손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진실되고 담담했다. 그와 반대로 소녀들의 인터뷰는 여러 장소에서 진행된다. 공사장, 놀이터, 주택가 등 소녀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는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지만 분명 그 나이에서 나오는 생기가 넘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할머니와 소녀들은 결국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들은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자수에 새겨질 것이다. 소녀들은 결국 할머니의 과거고 할머니는 소녀들의 미래다. 그것이 만난 현재의 인터뷰는 과거와 미래의 만남으로 보인다. 도플갱어 같은 그들의 대화는 공간을 뛰어넘어 실현되는데 영상의 시작이 달라도 끝이 같게 설정돼 있는 게 그 긴밀한 연결 관계를 완성시킨다.
키가 작다는 공통분모는 단순히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겪었던 이야기들조차도 인터뷰 소재, 삶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그들이 공유하는 경험은 단순히 신체적인 것을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된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관찰하면 그들의 삶은 순환한다. 어떤 소녀가 할머니가 될지 모르고 할머니가 어떤 소녀였을지 모른다. 또한 할머니가 바라던 소녀의 상을 2017년의 소녀의 모습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끝없는 삶의 연결고리는 모든 존재의 연결 가능성을 열어두며 끝없이 대상을 찾아 헤맨다.
총 9개의 작품이 있었지만 '높은 굽은 신은 소녀'는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영상도 꽤나 수려하고 두 개의 채널을 잇는 작가의 센스도 뛰어났다. 나와 어떤 공통점을 가진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비슷한 삶을 공유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자극한다. 이런 점이 내가 미디어아트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 전시는 미디어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봤으면 한다.
※다음은 같은 전시회의 작품 중 하나인 하광석 작가의 'Reality-illusion'으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