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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Dec 16. 2018

현실과 가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2018 미디어아트 특별전 <당신속의 낙원_MEDIA YOUTOPIA>

현실과 가상이 헷갈리는 건 영화 속에나 있는 일 같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그것을 쉽게 경험한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을 때 확신했던 그것이 실제로 아니었을 때와 같이 감각을 통한 인식은 우리에게 혼란스러운 정보를 줄 때가 생각보다 많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모든 걸 의심하고 증명하면 좋겠지만 일상에서 그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그것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나아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Reality-illusion'

'Reality-illusion'은 그런 물음에서 시작한다. 커튼을 걷고 들어가면 강렬한 파란색 빛을 마주한다.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파란색은 이미 그 공간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임을 상정하고 있다. 파란색 자체가 가지는 강한 상징도 있지만 그것과 같이 경험할 수 있는 물소리, 천장에 떠 있는 두 개의 달과 나무 그림자가 그런 점을 더욱 강화한다. 영화 <세 가지 색: 블루>에서 사용된 깊고 진한 푸른색의 수영장처럼 전시 공간은 우리를 현실과 분리한 채 관람객 혼자만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미 현실이 아닌 공간 속에서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감각, 비현실을 인식하는 나의 현실적인 감각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관람하는 주체의 위치와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소리와 주변 사물들에 의해 깨지고 만다. 결국 무엇도 현실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 고정되지 않은 주체는 결국 비현실적인 공간에 종속된다. 종속된 주체는 수시로 공간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공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인 교감은 변화하는 공간 속에서 주로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상상 속에서 주체는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 와 공간과의 동질성을 찾으려 한다. 어떻게든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테지만 경험에서 동질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주체에게 같은 공간 내에서 새로운 것들을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커튼을 걷고 나와 마주한 현실은 오히려 시시한 것들로 가득하다. 공유된 공간 속에서 주체는 오히려 자신의 현실적인 감각이 제한되는 것 같은 아이러니를 경험하는데 이때는 공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공유된 공간에서의 내버려짐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펼쳐진 세상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감각이 종속된 공간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주체의 발견,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무엇이 현실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가상이어야 하는지의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한다.


전시는 단순하지만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공간을 잘 대비시켰다. 파란색이 가진 이상 세계, 우울, 도피, 자유 등의 상징을 잘 활용하면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 것 같다. 우린 현실에서도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상황들을 종종 마주한다.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갈등, 사회에 대한 무기력증으로 침잠하는 개인 등의 상황에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개인이 노력할 수 있는 방향의 단서 또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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