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코는 왜 Jan 15. 2019

혹시 어떤 일 하고 계세요?

하룬 파로키 <노동의 싱글 숏>,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하룬 파로키의 전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중 <노동의 싱글 숏>과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글입니다.


노동의 단편적 기록인 이 이미지들은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시대, 지역, 역사, 순간을 사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내 일상이 나중에 가면 하나의 역사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중요한 순간은 자신의 역사로 남는다. 다만 그걸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해본 사람은 얼마 없다. 세상의 반대편 사람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은 그것의 가치와 범위,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고리처럼 연결된 여러 나라, 인종, 직업들이 서로 얽히고 부딪히고 교차하며 생성한 담론은 나라 각각의 영상이 가지는 고유한 분위기, 아우라를 넘어 하나의 고유한 가치를 가리키게 된다. '노동'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낸 이들의 퇴근은 단순히 '일을 마침'에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지구 반대편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일의 시작을 알린다.


어떤 일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하지만 시작과 끝이 모호한 연장선상에서 반복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끊기는 부분 없이 연속되는 초침처럼 우리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말이다.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퇴근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지는 지점이 있음을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에서 '공장'은 반복되는 삶의 은유처럼 이미 받아들여진다. 반복되는 삶, 시작과 끝이 있고 과정과 결과가 있는 곳이라는 비유적 개념이 공장이고 그것은 사회 전반에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우리는 그것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들은 살피지 못하기 마련이다.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은 닫힌 문 뒤에서 발생한다. 노동은 흔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런 지점에서 <노동의 싱글 숏>은 단순히 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은 않는다. <노동의 싱글 숏>을 통해 보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관찰한다. 그것을 관찰하는 과정은 때론 건조하게 때로는 불안하게, 또는 따뜻하게 영상 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은 관찰 대상이 가진 직업, 나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잡아내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영상의 중심 가치는 노동에 있고 모든 종류의 노동을 어느 지점에서 가장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대의 난제다.  


노동은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현장이라고 함은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는 곳처럼 느껴지지만 개인이 몰입하고 처리하는 일들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현장은 개인에게 각각 주어진다. 그것에 깊이 관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작가는 초기의 영화들에 주목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세히 보고 카메라에 담을 만큼 가치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작품은 단편적이지만 그것에 담긴 의미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노동하는 현장과 그것을 둘러싼 불규칙한 환경의 의미들은 1~2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계속 맞닿으며 부딪히고 조화되고 대치되곤 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하노이에서 베트남 전통 모자를 만드는 가족들의 모습은 단란하고 여유롭고 정적인 환경과도 어울려 모난 곳이 없다. 그에 반해 방갈로르의 한 정육점에선 동물의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옆에선 고양이가 그 머리에서 나온 지방을 얻어먹곤 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동물의 머리에서 나온 지방질로 끼니를 때우는 고양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기이하면서도 그 중재자인 인간의 노동의 가치를 삶과 죽음 사이의 무엇으로 생각하게 한다.


하룬 파로키,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예전이나 현대나 노동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라고 우리는 자신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곤 하지만 다른 것들과 연결된 노동의 의미를 깨닫고 그런 평가를 내려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 있는 노동의 현장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은 그런 평가를 내리는 데에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순히 비교를 통해 자신이 그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하는 것이 아닌 큰 틀 안에서 서로 고리처럼 연결된 그들과 자신을 관계 짓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과 가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