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여름밤의 꿈, 열대야 속 야경
어느 나라든 야경이 유명하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다. 그중 홍콩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야경을 떠올리면서 올 정도로 야경이 유명하다. 여행을 하기 전 먼저 다녀온 사촌이 했던 별 거 없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새로운 곳을 갈 때 항상 그렇듯 내가 지금껏 봐왔던 홍콩의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어둠이 내리고 간판과 가로등이 켜지면 붉은색의 복잡한 간판 아래로 테이블을 펴고 맥주와 안주를 먹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빌딩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도 따라가지 못할 높이의 건물을 보면서 감상에 빠지는 상상도 했다. 그중에서도 바다를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야경을 보며 먹는 칵테일을 상상하면서 이미 내 마음은 홍콩으로 떠나 있었다.
홍콩의 밤은 낮보다 밝았다. 너무 많아서 짝퉁인 것만 같았던 명품 매장의 전광판과 더불어 거리의 어느 곳 하나도 어둡게 하지 않으려는 듯 가로등이 사방에 밝혀져 있었다. 아무리 밝은 별도 어두워야 잘 보이는 법이기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 시간에 맞춰 예약한 칵테일바로 갔다. 한쪽 벽이 전부 유리창으로 돼 있었고 내부는 충분히 어두웠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했다. 그리고 끝났다.
사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별 거 없다. 반대편 홍콩섬에서 쏘아대는 레이저가 내가 있는 곳까지 오지 않고 "끝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찾기 애매했다. 사실 여행은 그 별 거 없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그래선지 바다에 떠다니는 조명들을 보고 있자면 다시 홍콩에 온다면 이것 때문이라 생각할 정도로 예뻤다. 달 같은 조명들이 자꾸 나를 밀다가 당겼다.
위스키나 럼이 섞인 칵테일을 먹고 나면 한껏 들뜨게 된다. 밖으로 나와 습기 찬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면서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1881 헤리티지'가 있다. 낮보다 밤이 더 어울리는 건물의 음영이 꽤나 고풍스러웠다. 계단을 올라 걸어보면 디즈니에서 봤을 법한 풍경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미녀와 야수'의 OST 'Beauty and the Beast'를 들으며 걸으면 어느 누군가가 손을 잡아줄 것만 같은 곳이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뻗은 전광판을 따라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빛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신경은 오로지 목적지를 향하게 된다. 좌표를 찍고 가는 우주선처럼 나는 걸었다. 걸어다는다는 말보단 떠다닌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두둥실, 알코올기가 올라왔다. 땀이 등줄기에 흐르고 적당히 열 받은 발에선 피가 돌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싱겁게도 맥주 한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물, 대나무로 지지하는 공사판, 어지러운 한자 간판과 수많은 메뉴가 겉에 적힌 가게들, 그곳들을 비집고 들어가 베이징 덕 냄새가 나는 아파트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숙소에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잤다. 길을 잃어버린 우주인이 표류하듯 나는 홍콩의 열대야를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