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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May 02. 2019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

사비나 미술관, '조던 매터-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


난 지금입니다!!


난 지금입니다

내가 가장 재밌게 봤던 만화책을 고르라면 역시나 슬램덩크를 고를 것 같다. 수많은 명대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의 영광의 순간을 지금이라고 하는 강백호의 대사는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누군가는 정대만의 '농구가 하고 싶다'는 말을 최고의 명대사로 꼽기도 하지만 그 대사는 결국 영광의 순간을 다시 스스로 만들어 가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담긴 말, 즉 강백호의 '난 지금입니다!!'라는 말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점에선 서태웅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강백호의 저 한마디는 자신뿐 아니라 만화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 나아가 그걸 보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강한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모두,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하여!


나의 환상으로 만든 세계, 모두가 꿈꾸는 원더랜드


오, 주여 / Savior


슬램덩크의 명장면과 같이 우리의 빛나는 순간, 사실 누군가 기록해주지 않는다면 나조차도 잊어버릴 그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왜곡되고 뒤틀리고 빠지고 더해지고,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온 결과물 즉, 추억은 우리의 환상 혹은 이상이 섞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왜곡된 과거를 줄여서 '추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이미 지나가버린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도 '환상'의 요소를 선천적으로 가진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너무 낯설지 않게,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느껴선 안 되기에 현실에 기반을 둔다. 그걸 반영하듯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일반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자세들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변 상황은 너무나 평온하고 소재는 산책하는 엄마와 딸, 자신이 기르는 개, 눈을 치우는 청소부 등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것들을 차용한다. 작가는 일상과 환상이라는 두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관객에게 짜릿함을, 때론 아련함을, 혹은 경외를 느끼게 한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 '환상 퍼포먼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을 다시금 재구성하게 도와준다. 우리가 이따금씩 하는 엉뚱한 상상들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짜릿함은 여기서 나온다), 엉뚱한 상상을 실현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비록 실패했더라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아련함은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시를 관람하는 현재를 바깥과 분리해버린다. 전시장 안에서 말 그대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 관객은 스스로에 대한 경외, 혹은 공간에 대한 경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을 통해 답답한 현실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사진 속 무용수들은 그걸 깨우쳐주기 위한 대리인들이다. 그들의 몸을 통해 우리는 불가능한 현실을 간접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한 작품들로 둘러싼 물리적 공간에서 스스로를 경외의 대상으로 승격시키면 나는 스스로의 신이 되는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결국 현실


R. 나와 결혼해 줄래요? / The Engagement


위에서 밝혔듯이 건조한 현실 속 환상의 공간, 꼭 디즈니랜드처럼, 혹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펼쳐진 이 공간도 결국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위의 과정을 통해 한껏 우쭐해져 있는 나도 결국은 전시가 끝나고 나선 현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사실에 너무 실망하지 말기 바란다. 이 전시는 우리가 현실에 연착륙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놨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다시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빛나는 순간보다 더 많은 평범한 순간들을 더 사랑하도록.


지금 말하는 현실이라는 건 저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R. 나와 결혼해 줄래요?'는 공원관리인이 작업을 허락하지 않을 걸 안 작가가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빨리 작업한 결과물이다.


사랑은 뜨거울 때 가장 아름답다 / Dirty Kiss


위의 작품은 실제 부부가 모델이다. 영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을 춥고 더러운 강에서 키스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고 그걸 다 씻어내기 위해서 몇 시간을 더 소요했다는 이야기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전부 던져야 사랑을 얻는다 / Body Surf


이 작품은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무용수가 자신의 파트너와 닿기 전까지 최대한 자세를 유지해 찍었다고 한다. 그것도 23번이나. 


세상을 뒤집다 / Tunnel Vision


순간은 아름답다. 하지만 모든 날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작가가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을 기록한 건 그런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 속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했다. 연속된 삶 속에서 저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 나는 살아가겠다고. 한 시간 가량 물에 들어가 완벽한 키스를 해내거나 몸이 완벽한 곡선을 사진에 담기까지 40번의 점프를 감행한 저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 누군가는 분명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을 거라 믿는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을 만들고 기록한 전시,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은 나를 다시금 내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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