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16 시드니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지던 1월 말 우리 아이들의 2020년도 새 학년 개학이 시작되었다. 중국 유학생이 많은 큰아이의 학교에서는 개학을 앞두고 본교의 중국 유학생들은 개학 2주 이전부터 호주에 들어와 있었음을 모두 확인하였으니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는 이멜을 보내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걱정도 많이 했다. 우리가 호주에서 누가 유럽 사람인지 러시아 사람인지 호주 사람인지 구별 못하듯이 이들도 누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동남아시아인인지 구별 못하기에 아이들이 자칫 학교에서 재채기라도 했다가 불합리한 상황을 겪고 상처 받을까 봐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 지차 점점 초조해지고 한국에 가족들도 걱정되어 계속 한국 기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3월 5일 한국 여행 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정말 심란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든지 내가 한국에 가야 할 때 바로 비행기표를 구해 갈 수 있는 상황과 내가 아무리 한국을 가려해도 방법이 없다는 상황은 엄연히 달라 나의 호주생활에 너무 큰 상실감과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지자 호주에서의 분위기도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시드니 시티에서는 유럽을 출장 다녀온 직장인들이 확진받기 시작하여 역시 시티로 매일 출퇴근하는 남편도 바이러스와의 접촉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사망자가 늘어나면서부터 호주에서의 물건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호주는 항상 먹거리가 풍족했기에 뭐 며칠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마트의 생필품 코너는 3월 말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고 미국의 사재기 기사가 나온 뒤(3월 15일경)로는 호주 마트의 고기 코너에 고기도 보기 힘들어졌다. 그 많은 호주 소고기들이 수요를 못 따라가다니.
평소 나는 생필품은 미리미리 사놓는 성격이라 3~4주는 괜찮다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은 집에 쌀이 떨어질까 봐 걱정스럽다. 당장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마트에 물건이 없는 상황이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마트를 두 차례씩 방문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필품 진열대는 텅 비어 있지만 운 좋게 내가 지나갈 때 쌀을 진열하고 있으면 쌀한팩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원이 쌀을 진열하려고 카트에 끌고 오면 마트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줄을 서기 시작한다. 점원은 쌀을 진열할 필요 없이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끝난다. 그리고 점원 옆에는 보안요원도 붙어있다. 하루는 둘째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혹시나 살만한 게 있나 마트에 들렸는데 텅 빈 마트를 보고 아이가 놀란 것 같아 괜히 같이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채소코너는 많이 있으니 채소를 많이 먹도록 해볼게요. 근데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굶어 죽은 사람이 나왔다는 뉴스 있었어요?”
회사생활에서 벗어나 나의 일상이 여유로워져서 좋다 생각했던 호주살이가 산불 걱정, 가뭄 걱정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 세계적 전염병과 한국과의 단절, 그리고 쌀이 떨어지진 않겠지 등 걱정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주말 우리 집 앞 본다이 비치의 풍경이다. 사실 이 날 저녁 야외로 산책은 아직 괜찮겠지 싶어서 본다이 비치까지 산책 삼아 걸어갔다가 해가 졌음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었다. 요즘 비가 자주 오면서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는데 이 날은 갑자기 낮 기온이 33도 가까이 올라가며 무척 더운 날이었다. 낮에는 얼마나 많았단 거야 생각하며 집으로 왔는데 바로 다음날 신문 1면 기사에 실림과 동시에 본다이 비치에서부터 이어지는 타라 마라 비치, 브론테 비치까지 모두 폐쇄되었다.
현재 본다이 비치 주차장에는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코로나 19 검사 진료소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