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9월 중순이 지나고 갑자기 뜨거운 날씨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봄꽃이 만개하고 있지만 햇볕은 봄 없이 뜨거운 여름으로 바로 넘어간 것 같다. 호주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도 많이 좋아져서 시드니가 있는 NSW주는 며칠째 지역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빅토리아주의 신규 확진자도 10명대로 떨어졌다. 조만간 봉쇄되었던 주경계도 열릴 것 같다.
날이 따뜻해지면 나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지, 우리 가족은 또 다시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 드라이브를 떠났다. 이번에는 지난번 당일치기 여행 때 못 가본 곳을 구경해보았다.
일정 : 내셔널 갤러리 오브 오스트레일리아 – 커먼웰스 공원 – 내셔널 동물원 & 아쿠아리움 – 오스트레일리안 워 메모리얼
오늘의 첫 관람지는 내셔널 갤러리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데 주차를 해결하고자 하다 보니 주차장이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되었고 들어온 김에 잠시 둘러나 보자 싶어 갤러리로 입장하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 것인지, 원래 무료 관람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하여 주소지와 전화번호만 기재하고 관람할 수 있었다.
별생각 없이 들어왔지만 무척 작품이 다양하고 아이들도 흥미롭게 관람하여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큰아이는 이번 미술수업에서 클로드 로랭과 관련된 에세이를 써야 했는데 무심코 지나다 보니 인터넷에서 본 클로드 로랭의 작품 한 점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부끄럽지만 클로드 로랭이란 화가를 아이가 숙제할 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통조림 캔으로 친숙한 앤디 워홀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작품들도 종종 전시되어 있어서 즐겁게 둘러보았다.
캔버라는 봄꽃 축제로도 유명한데 올해는 역시 꽃 축제도 취소되었다. 그래도 봄꽃이 많이 피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캔버라에 온 것인데 해마다 축제장소였다는커먼웰스 공원에는 화분 속의 꽃만 좀 있을 뿐이고 축제장소일 듯한 곳은 공사 중인 것인지 팬스로 둘러쳐져 있어 많이 아쉬웠다. 캔버라 벚꽃이 유명하다던데 도대체 벚꽃은 어디 있는 것인지, 공원 한쪽에 심은지 얼마 안 된듯한 키 작은 벚나무 몇 그루만이 만개해 있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중 대사관 거리에 만개한 벚꽃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어 보니 역시나 일본 대사관이었다. 화사한 벚꽃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일본 대사관 바로 맞은편의 대한민국 대사관을 보니 괜스레 벚꽃이 보기 싫어지는 이 기분이란. 우리는 둘째 아이가 항상 원하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커먼웰스 공원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화분 속의 꽃
내셔널 쥬&아쿠아리움은 입구부터 옹기종기 동물 우리가 모여 있어 작은 동물원일 것이라 예상하고 동물 하나하나 여유 있게 보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역시 호주의 큰 땅덩어리만큼 동물들도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오전에 흐리고 좀 쌀쌀했는데 갑자기 해가 이글이글 끓기 시작하면서 그늘도 거의 없는 넓은 동물원을 한참 걷다가 동물 한 마리 보고를 반복하다보니 우리는 지쳐서 출구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이와 동물 한 마리 한 마리를 집중해서 보는 데는 시드니 시티에 위치한 동물원이 제일 편안한 것 같다. 동물복지를 위해서는 좋은 환경은 아니겠지만 실내라서 시원하고 아주 많이 걷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내고 지친 우리 가족은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몸에 안 좋은 탄산음료로 체력을 보강하고 오늘의 마지막 관람지인 오스트레일리안 워 메모리얼로 향하였다. 이 곳 또한 예상외로 규모가 크고 전시물이 많았다. 각 전쟁 별로 자료와 전시물들이 가득 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절로 엄숙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한쪽에 Korean War 전시구역도 있었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저 멀리 국회의사당까지 확 트인 광경을 보니 다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렇게 하루를 또 바쁘고 알차게 보내고 다시 시드니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