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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Feb 03. 2021

#24 시드니_아름다운 하룻밤 보내기

 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이번 주말 우리 가족은 하룻밤 시드니 호캉스를 즐기러 가본다. 여름방학 여행 계획이 무산되고 매주말마다 뭐할까 고민하는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주말 우리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은 시티에 있는 호텔이었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줄고 주경계마저도 봉쇄돼서 그런 걸까 평소에 비해 저렴한 방값에 조금씩 욕심을 내다보니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가 같이 보이는 가장 뷰가 근사한 방으로 예약하게 되었다. 아마도 시드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호화로운 밤이 될 것이다.

      

 아빠는 퇴근 후 합류하기로 하고 아이들과 주섬주섬 짐을 싸서 호텔로 향했다. 호텔 주차비도 무료인데 운전을 못하는 엄마 때문에 록스의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간 아이들이 더위에 지쳐 힘들어하긴 했다. 그렇게 체크인하는데 나의 어설픈 영어를 듣자마자 한국어 할 수 있는 직원을 불러줄까 하고 물어본다. 나를 쉽게 포기하지 말아 줘요, 나는 할 수 있다고요 당당하게 “I’m Ok!”를 외쳤으나, 예약 당시 룸예약은 남편의 이름으로 하고 체크인은 내 이름으로 하겠다고 기재했는데 여권을 챙겨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귀찮아서 호주 면허증도 발급받지 않아 없고, 늘 들고 다니던 한국 운전면허증에 영문 이름이 안 적혀 있다는 사실은 이날 처음 알았다. 신원확인을 할 수 없으니 호텔 직원들은 난감해하며 결국 한국인 직원을 불러주었다. 그래도 우리말로 정확하게 안내를 들으니 정말 편하고 안심되긴 하구나. 

 그렇게 20층에 위치한 오늘의 우리 룸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숨 막히게 아름다운 시드니 하버뷰가 펼쳐져 있다. 아이들과 “와~”하는 감탄사만 연발하다 수영장 가자는 아이들의 채근에 전화기를 든다. 코비드로 인하여 인원 제한을 위해 수영장 이용 전에 예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호텔의 좋은 점은 역시 직원들이 친절하게 “너는 영어를 잘못해도 돼~”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겨준다는 것이었다. 넓진 않지만 분위기 좋은 수영장에서 다른 투숙객들은 대부분 잠깐 머물다 돌아가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은 2시간 가까이 신나게 놀고 나왔다.     


 저녁은 록스에 내려가 간단히 먹고 올라오기로 했다. 그날은 불금, 호주의 젊은이들은 불금에 록스에 다 몰려오나 보다. 해가 길어져 아직 날이 환한데 이곳은 흥겹게 시끌시끌하다. 룸으로 돌아와 우리는 해지는 시드니 하버를 멍하니 한참 동안 창문에 앉아 보았다. 아이들까지도 말이다. 여행을 여기저기 다니며 호텔에 머물러봤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창밖 경치에만 몰입하여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 군데라도 더 돌아다니려고 바쁘게 다녔지 이런 시간을 가질 여유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시드니는 사람의 마음을 느슨하게 여유 있게 만들어 주는 도시인 것 같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고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눈을 떼지 못했다.      

 밤에는 아이들은 룸에서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고 남편과 나는 꼭대기층에 위치한 바에 와서 칵테일을 마셨다. 바에는 패밀리룸도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저녁시간에는 출입금지라고 한다. 큰아이는 엄마아빠는 우리가 출입금지라 내심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역시 엄마아빠를 위해 동생을 챙겨주는 배려심을 발휘해주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드니 야경은 서울의 야경만큼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검은 바다에 반짝이는 하버브릿지와 불을 밝힌 채 바다에 총총이 떠있는 배들, 그리고 바다 뒤로 어두운 숲에 반짝이는 보석을 한 줌씩 뿌려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날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냈던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친구들에게 갑자기 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번 겨울 한국은 눈비가 많이 오고 매서운 추위라서 걱정했는데 빗길에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행복하기만 했을 것 같은 어린 시절 같이 보낸 친구들과 그 시간을 떠올려보니 아름다운 야경에 그리움과 슬픔이 더해졌다. 반짝거리던 그리운 그 시절 같이 했던 친구야, 아름다운 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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