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또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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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언제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맛있는 밥을 먹다가도,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가만히 앉아 넋을 놓고 있다가도.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금세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불안.
불안이라는 신호가 느껴질 땐, 그 애에게 인사를 건넨다.
“들어왔구나. 요즘 내가 힘들어 보였구나.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러니 고새 기척을 느끼고 네가 찾아왔지.”라고.
불안이 생기면, 그제야 하루를 돌아보고 어제를 돌아보고 그간의 일들을 돌아볼 텀이 생긴다. 신기하게도.
불안이 깊어진 어느 새벽엔. 내일과 내일을 잇는. 아주 먼 날의 내일도. 내다볼 이유가 된다.
어떤 날은 걱정과 한숨에 잠식되지 않도록
좋아하는 것들을 펼쳐놓고 마음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하기도 한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날들은 끝없이 가라앉겠다 마음먹는 편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까지 발끝에 모래알 하나라도 닿길 바라며.
그렇게 불안을 품에 안고 아주 깊게 내려가 그 끝에서 땅을 박차고 올라올 수 있기를.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면 그곳에 내가 있다.
모래알 위에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불안을 안고 있는 내가.
그곳에 가라앉아 있는 나를 본다.
기다란 꼬리를 가진 불안이 쉼 없이 던진 질문에 답을 낼 때까지. 어떤 때엔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엔 아무리 생각해도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또다시 처음이어도 괜찮다. 그럴 땐, 머리 한번 쓱 쓸어주면 될 일이다. 괜찮아. 내가 너를 아는데, 지금 그 답 찾지 못해도 괜찮아. 우리 같이 이 발아래 묻어두고, 다음에 다시 꺼내러 오자. 그러니 이만 올라가자. 우리 너무 오래 내려와 있었어.라고 말해주면 될 일이다.
어쩌면 불안의 신호는 평생 동안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테다.
중요한 것은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불안은 나를 더 깊어지게 만들고, 내 삶 속 내가 원하는 방향에 점을 찍어 단단한 심지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영원히 없앨 수 없다면, 친해질 수밖에.
잘 지내보자. 어차피 함께해야 할 마음이라면.
“안녕. 또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