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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May 05. 2024

희망 심기

- 시와 글쓰기로 그동안의 일을 돌아보며 마음에 희망의 씨앗 심어 보기.

희망 심기     


희망

그 가벼움

홀로 동동 떠

세상에 빛을 내며

외로움을 견딘다

그 외로운 희망 따다가

내 안에 심어본다

따스하고 촉촉해졌다

홀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있다. 아이는 정글같은 남자아이들의 집단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게임과 유튜브로 초딩잼민이파워를 매일같이 풀충전해가며 다사다난하게 커가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줄임말과 욕을 해서 이 엄마를 뒤집어 놓았고, 며칠 전에는 청소년 미디어 이용 습관 진단조사에서 위험군으로 나와 또 한바탕 마음에 시커먼 파도가 덮쳤었다. 아이는 말했다. 내가 너무 정직하게 대답했나봐. 나보다 심각한 애들 엄청 많은데. 그 일이 있은 이틀 후, 이번에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다가 축구공을 학교 건물 높은 곳으로 올렸다. 아이의 친구가 가져온 축구공이었다. 아이의 친구는 크게 화를 내며 아이에게 비싼 축구공이라고, 새로 사서 내놓으라고 아이를 몰아세웠고, 아이는 끝내 울음이 터져서 내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울먹거리며 떨리는 목소리. 엄마, 어떡해. 미안해...... .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이가 풀이 죽어서 정말 글자 그대로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현관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게 달려와 푹 안겼다. 그러고는 또 하는 말, 엄마, 미안해.     


  에휴, 이 녀석아. 아이의 계속되는 미안하다는 말에 나도 끝내는 마음그릇이 넘쳐버렸고, 아이를 안은 채로 그냥 현관문 앞에 같이 주저앉았다. 일단 먼저 핸드폰을 꺼내서 배달앱으로 저녁을 시켰다. 특별한 날 먹는 우리의 소울푸드, 떡볶이였다. 아이에게 엄마 옷 좀 갈아입고 밥부터 먹자고 해서 몸에서 떼어놓고는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이는 시든 풀잎마냥 식탁에 앉아 있었다. 떡볶이가 도착했고, 그 와중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맛있게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아, 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잖아. 그동안 학교 운동장에 공 올려서 사고 친 애들 한두 번 봤겠어? 뭐, 공만 있게? 신발주머니, 실내화, 모자, 가방, 물병 등등 아마 거기 보물창고일걸.” 학교 지붕에 물병 던져서 혼냈던 학생 이야기를 해줄 때 아이는 드디어 푸하하 웃었다. 하필이면 물병에 물이 들어 있었던지라 물병에서 물이 새서 밑에 있던 여자아이들 몇이 물벼락을 맞았는데 그걸 본 주변의 꾸러기들이 “야, 그거 비둘기 쉬 싼 거야.”라고 하는 바람에 울고 불고 난리치고, 놀린 아이들 불러다가 혼내고, 물병 던진 아이도 불러서 혼냈던 사건이다.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엄마도 올해 4학년이잖아. 네 말이 맞더라. 엄마네 학교도 모범생인 남자애들 두어 명 정도씩이 미디어중독 위험군으로 나와서 애들이 검사 진짜 이상하다고 했어. 선생님들은 네 말처럼 너무 정직한 애들만 다 걸렸다고 농담 삼아 말했고. 뭐가 그렇게 엄마한테 미안해. 그런 말 그만해. 이런 걸로 미안할 거면 엄마가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은 아마 수백만 번은 엄마한테 미안해야 할 것이야. 미안하다는 말 말고 고맙다는 말로 바꿔서 하기로 했잖아. 내가 이렇게 사고치고 크는데 매번 잘 해결해줘서 고마워요, 엄마. 이렇게 말해봐. 자, 어서.”    

 

  그제야 베시시,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 내게 소리내어 말해주었다. 고마워요, 엄마. 라고.     


  떡볶이. 그것은 분명 소울푸드였다. 떡볶이를 먹으며 나와 아이는 소울을 담은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이야기 안에는 아이가 학교상담실에서 집단상담을 받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는 불안과 강박, 경미한 틱이 있어서 상담실에서 놀이치료와 상담을 받은 기간이 있었는데 상담선생님께서 더 상담실 올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학교에도 상담실이 있으니 거기서 진행해도 충분할 것 같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에는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외부 상담선생님께서 집단상담을 해주고 계시는데 그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집에 오셔서 소파에서 티비만 보고 있을 때 너희들은 기분이 어땠니? 감정단어로 말해 보렴.” 했더니 아이들이 쭈루룩 차례로 “저는 아빠 없는데요”, "저는 아빠도 없고 집에 소파도 없는데요.”, "저도 그런데요"라고 대답했고, 아이는 자기 차례가 되어서는 그만 친구들 대답과 당황하시는 선생님 모습을 보며 큭큭큭 웃음이 터져 선생님께 죄송했다고 했다. 상담받는 아이들에 대한 기본정보를 받지 못한 채 수업을 준비해 오셨던 모양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아이의 이야기는 너무도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초딩잼민이풀파워만 가동중인 철없는 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더랬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잘 놀지 못하고 항상 복도와 계단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배회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동물원에서 본, 유리벽에 계속 머리를 찧던 타조가 생각난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그 아이들은 왜 그런거냐고 묻기도 했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이 있는데 어떤 유튜브는 그냥 웃긴 말만 하며 게임방송만 하는데 어떤 유튜버는 그렇게 번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기도 한다며 멋지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아이의 꿈은 유튜버다. 자기도 그런 멋진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신기했다. 잘 크고 있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우리 아들.     


  떡볶이를 먹으며 별별 이야기들을 반짝거리며 나누고 나니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씻으러 들어가고 나는 그제야 좀 숨 돌리고 온갖 소소한 집안일과 아이 알림장과 숙제 등을 확인하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도대체 집안일은 뭐 이리 매일같이 많은지. 아이가 씻고 나오자 보게 된 건 그만 지치고 힘들어서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였고, 아이는 머리 말려달라고 오면서 내게 또 "엄마, 나 때문에 힘든 거 맞지?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아이를 보다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음, 미안해할 거 없어. 며칠 후에 5월 8일인거 알지? 그때 보자, 아들." 나의 말에 아이가 순간, 개구진 표정과 함께 환하게 웃었다. "아, 맞다. 나 용돈 벌써 5000원 모아 놨어요. 보석이 좋아? 꽃이 좋아?" 진심 밝아진 모습. 아마 자기도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을 거다. 솔직히 답했다. 엄마는 보석이 좋다.     


  참, 깜박했다.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학교 지붕 위 축구공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아이에게 학교 가자마자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중재를 부탁드리라고 알려주었고, 아이에게도 나름의 해결법을 제시해 주었다. 아이와 함께 연습한 해결법은 이거다. "너의 축구공이 새 것이 아닌데 내가 새로 비싸게 사주는 것도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는 축구공 중에 너가 맘에 드는 걸로 하나 줄게." 아이는 이 말을 나와 몇 번이나 연습하고 학교에 갔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차분히 잘 전달하였으며, 친구도 흔쾌히 받아들였고, 집에 있는 축구공들 사진을 카톡으로 찍어 보냈다. 아이 친구는 그중에 원하는 축구공을 골랐다.     


  어느새 훌쩍 큰 아이를 보며 잠시 멈춰 지난 몇 년을 돌아본다. 혼자서 돈 벌며 아이 키우기. 힘들기만 할 줄 알았다. 아픈 몸이라 매일 먹는 약도 있는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제발 아이가 스무 살 될 때까지만이라도 내 몸이 버텨주기를. 매일같이 이를 악물며 이런 말들을 하며 아침에 눈을 뜨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힘들어서 다 놓아버릴까 봐, 그러면 내 아이가 너무너무 불쌍해서 정말 악착같은 마음으로 병원 치료와 회복에 매달려 왔다. 남들이 해보라고 한 온갖 기묘한 것들까지도 은근슬쩍 다 해보며 기대와 실망 사이를 끝없이 왔다갔다 하느라 매일같이 엉엉 울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돌아보니 내가 바라고 또 바랐던 많은 것들이 문득, 시나브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느껴진다.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 깊이 감사해진다. 내가 진정 바랐던 것, 나는 이러저러하게 컸지만 아이는 제발 다르게 커가기를 바라왔던 간절한 마음들. 어딘가에 그 마음 닿았던 걸까. 여전히 매일 약을 먹고, 피로와 우울감이 나를 덮치지만 예전처럼 크게 휘청거리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시쓰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자가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에잇, 아무려면 어떤가. 괜찮으면 되었지.


  나의 아이야, 우리의 모든 아이들아. 부디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건강한 고민을 하며, 건강하고 따뜻하게 자라렴. 너희들이 그렇게 자랄 수 있도록 더 든든하고 푸근한 울타리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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