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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Jun 30. 2024

피노키오의 나라

- 3개월마다 김주환의 회복탄력성 검사지 활용하여 마음근력 키워나가기


피노키오의 나라    

 

참 열심히 살더니만

사람들 코가 자꾸만 길어진다     


애써 기른 그 코

혹여나 부러질까

자꾸만 멀어진다

여기저기 멀어져 간다     


그러니 안 들려서

소리 지를 수밖에.     


아이가 묻는다

-엄마, 우리는 언제 사람이 되어요?

-글쎄 모르겠구나. 저 코가 저리도 길고 멋진 걸 보면 아직 멀은 듯 하구나.     


나도 모르게

내 코를 만져 본다

사람이 되고 싶은 날이다              


 


 

  “엄마, 저기 봐. 저기 보고 있으면 달빛 볼 수 있어.”     


  동네에 참 좋은 곳이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이다. 꽤 시원스레 넓은 광장도 있고, 조그만 야외 공연장도 있다. 그곳에서는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주말 저녁마다 무료로 각종 다양한 공연을 한다. 일명 ‘황금토끼’이다. ‘황금 같은 금요일 토요일 끼 있는 무대’라는, 감칠맛이 아주 그냥 듬뿍 나는 뜻을 담은 행사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그곳 단골손님이다. 5월 어린이날과 가족의 날이면 항상 열리는 행사, 볼거리 즐길 거리 가득한 다문화 축제, 꽤 규모가 큰 벼룩시장, 그 큰 광장에서 정말 엄청나게 큰 화면과 웅장한 소리를 들으며 감상하는 야외 오페라 공연,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레포츠를 즐기는 젊은 청년들, 아이들이 맘 편히 실컷 놀 수 있도록 수질관리까지 해주는 야외 분수대에 무료 예술공연까지! 그야말로 1년 내내 완벽한 장소이다. 아이 사진첩을 찾아보니 5살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놀러 가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아이가 11살이니 무려 6년 정도의 예술회관 광장 내공이 쌓인 셈이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몇 년을 놀러 다녔는데. 나는 전혀 몰랐다. 야외공연장의 달이 어디서 뜨는지.    


 가장 최근에 본 야외공연은 전통음악공연이었다. 공연 시작도 전에 자꾸만 아이가 옆에 꼭 붙어 앉아서 공연무대 쪽은 보지 않고 팔을 펼쳐 들고 손가락으로 “엄마, 저기 봐. 저기 보고 있으면 달빛 보여. 달빛 있다구!”라고 보챘다. 나는 심드렁하게 “음, 그러네. 엄마도 달빛 보이는 것 같아. 예쁘다.”라고 성의 없이 몇 번 대답해주고 말았다. 그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와는 달리 아이는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하늘 타령, 달빛 타령이었다. 공연이 클라이막스에 이르고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였다. 아이가 끝내는 못참고 내 양 볼에 손바닥을 찰싹, 그리고는 그렇게 달빛타령을 하던 쪽으로 강제로 내 고개를 돌렸다.


  아.......... .


  순간, 시간이 멈췄던 것 같다. 아이가 가리켰던 그곳엔 정말 달이 떠 있었다. 보드레한 달빛이 하늘에 펼쳐지고 있었다. 한같 미물인, 이 보잘것없이 나약한 인간의 눈으로도 마음껏 올려다 바라볼 수 있는, 그토록 순하디순한 달빛이 하늘 가득 순연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노래는 홀로 아리랑에, 퐁경은 그득한 달빛에, 아주 만족스러우면서도 개구진 표졍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 녀석까지. 아, 완전히 졌다.     


 너무 행복한 순간들을 가슴 가득 만끽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바닥에 그날 공연에 대한 안내가 있는 브로셔가 보였다. 브로셔를 주워 펼쳐 보고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공연의 제목은 ‘달빛의 향기’였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브로셔 같은건 보지도 않는 아이가 어떻게 그런 걸 알았을까. 아니, 느꼈을까. 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쪽에서 달이 뜨는지 미리 알고 있었어? 이번엔 아이가 심드렁했다. 뭐, 그냥. 그럴 거 같았어. 내가 말했다. 엄마, 진짜 깜짝 놀랐어. 그거 알아? 오늘 공연 제목이 ‘달빛의 향기’야. 우리 아들, 진짜 대단한데? 아이는 여전히 별 반응이 없다. 어느새 공연과 달빛의 여운은 싹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는 아이.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아주 애교를 좔좔 넘치게 부리고 있다. 우리는 시원스레 막대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많은 상념들이 나를 지나갔다. 나는 왜 어느 쪽에서 해가 뜨고 지는지, 달이 뜨고 지는지 모르는 걸까. 옛 시절 글들을 읽다 보면 이런 표현을 본다. 엄마의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면 엄마품이 떠오른다고. 지금은 쿠쿠가 밥이 다 되었다고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음성으로 알려준다. 요즘 아이들은 밥 짓는 냄새를 알까. 여름 한 철 비가 실컷 쏟아지고 나면 쌉싸라히 피어나는 초록의 풋풋한 향은 알까. 고대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며 길을 걸었다는데 우리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 인간은 어떤 능력을 얻어왔고 어떤 능력을 잃어온 걸까. 고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신화니 전설이니 비과학적이니 미신이니 하지만 실은 어쩌면 그건 일부분 정말 사실이었던 건 아닐까.     


  올해가 시작할 때 나와 했던 약속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회복탄력성 검사를 해 보겠다고. 회복탄력성에는 3요소가 있다. 자기조절력, 대인관계력, 그리고 긍정성이다. 달빛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별자리를 보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었던 고대인들은 이 단어들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행히 감사하게도 나의 회복탄력성 점수는 지난 3개월 동안 조금 올랐다. 여전히 ‘나약파’로 나오지만 그래도 총 16점이나 올랐다. 자기조절력, 대인관계력이 각각 5점씩 올랐고, 긍정성은 6점이나 올랐다. 신기하다. 내 자신이 무척이나 많이 회복된 느낌이다.     


  검사지를 수행하고, 점수를 정리하고 나서 내가 한 일은 엉뚱하게도 코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피노키오가 생각났다. 내 코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작아지면 자기조절력도, 대인관계력과 긍정성도 온전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코가 그렇게 많이 길어지지 않아 하늘과도 가깝고 달빛과도 가까운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감사했고, 안도했다. 내가 문제네, 내가. 무얼 위해 무엇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지 정신 잘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가 길어지는 일에 내 인생을 쏟지 않기를. 우리 모두 그러하기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진실로 그러하기를. 우리 모두 그렇게 사람이 되어가기를.      


  다음 3개월 후는 9월 30일이다. 그때도 회복탄력성이 높아져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잘 다스리고, 함께하는 이들과 평화롭게 살 줄 알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밝고 맑게 살아가는 내가 되어갔으면 좋겠다. 아, 좋다. 지금이 좋다. 뭔가를 희망을 갖고 바라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참 좋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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