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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춤

-시를 쓰며 그간 고생했던 마음 쉬어주기

by 서로


바람과 춤

-서로



세상에는

그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희망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꿈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탐욕이라 하는 그런 것이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것은 저 절로 불어온다

마치 바람처럼


뜨겁게도 불어오고

독하게도 불어오고

시리거나 시원하게, 혹은

다정하고 온화하게도

불어온다


그러면 할 일은 이것뿐이다

불어옴에 한껏 열리기

기꺼이 하나 되어 어우러지기


인간들은 그걸

춤이라고 부른다지


어떤 바람에는 나긋나긋하게

또 어떤 바람에는 격하게

그저 한껏 열리어 춤추고 나면

어느새 그것은 또 저 절로

불어가 사라진다


난 오늘

어떤 춤을 추었더라


모르겠다, 그래도

후련하니 되었다





이번 여름방학은 정말 하루도 쉬지 못했다. 행동중재전문가 과정 연수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해서 들은 건데. 힘들 줄 미리 알고 있었는데. 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어렵고 힘들 줄 몰랐다. 그리고 많은 분을 뵈었다. 열정적이시고, 똑똑하시고, 거기에 지혜까지 겸비한 많은 선생님을 뵈며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시간이었다. 공부하기 전엔 몰랐는데 행동중재란 응용행동분석을 인간의 문제행동에 적용하는 작업이다. 파블로프의 종 치면 침 흘리는 멍멍이 실험 이야기. 그걸 매우 치밀하게 적용하는 거라는 느낌이었다. 일반 교사들은 3분의 1정도 계셨고, 3분의 2는 특수교사이셨다. 교대 교생실습 중 특수학교 교생실습 후, 정말 마음이 겸허해졌던 기억들. ‘와, 이것만큼은 난 못 할 것 같아’라고 속으로 비명했던 경험들. 마음 깊은 존경심. 그렇게나 대단하신데,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자리를 지켜내고 계신데. 더 놀랐던 건 선생님들의 고민들이셨다.


... ... 아이가 수업 중에 사람들을 무는데,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교육적 상황을 제가 만든 것 같아서 고통스러워요. 여전히 강압적이고 벌적인 강화가 대부분입니다. 긍정적 행동지원이란 건 도대체 정말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게 가능한 거라면 전 정말 그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 ...


그 거대하고 거룩한 마음들. 완전 레벨이 달랐다. 정말 차원이 달랐다.


수업 내용도 무척 어려웠다. 행동중재를 위한 연구와 실시는 단일대상연구로 이루어지는데 교수님들이 수업 중에 쏟아부으셨던 단일대상 현장연구 논문들 중에 내가 제대로 소화해 낸 건 단 한 개도 없었던 것 같다. 진심, 완전, 엄청나게 어려웠다.


실제 사례를 가지고 해보기도 하고, 오은영의 금쪽이 영상을 보며 실습하기도 했는데 하면 할수록 짙게 느낀 건 ‘아, 난 이거는 진짜 못하겠다’였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사례를 공유하는 과정 그 자체만 해도 PTSD가 발생할 것 같았고, 그 아이들의 행동을 반복해서 보며 분석하고, 중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시하고, 효과를 검증하면서 중재의 마지막인 일반화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신도 못 해낼 일처럼 보일 뿐이었다. 교수님들께서도 머리를 감싸시거나 쓴웃음을 지으시며 어금니를 악무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시곤 했다. 정말 벅찬 작업이었다.


나처럼 이 연수를 처음 접한 선생님 중 한 분이 끝내는 연수 중간에 아직 익지 않아 텁텁하고 쓴 속내를 토해내고 말았다. “교수님들은 정말 이게 현장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교사들이 이걸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놀랍게도!! 교수님께서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선생님의 울분 가득 담긴 질문에 답하셨다. 기억되는 대로 대략 적는다면 이런 대답이셨던 것 같다.


“못 하죠. 못합니다. 우리도 알아요. 못한다는 거. 그런데 왜 못하는지도 압니다. 선생님 혼자 하셔야 해서 불가능한 거예요. 이 연수를 통해 선생님께서 연수 내용을 단번에 다 이해하시고 외우고 익히셔서 선생님 교실에서 선생님께서 홀로 이 작업을 해내시라는 의미의 연수가 아닙니다. 무조건! 팀으로 해야 해요. 그래서 이 연수 하는 거예요. 저희도 쉴 새 없이 현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들, 하루에도 몇 건씩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와요. 실제로 현장 작업할 때는 우리가 연구설계, 중재 계획 다 짜드립니다. 저랑 작업해 보신 선생님들 여기 많이 계셔요. 혼자서는 안되시지만 해 보면, 같이 해 보면 된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십니다. 연수 끝나고 바로 교실에서 적용해보려 하지 마세요. 선생님들 병 나십니다. 그래서 병 나시는 거예요. 계속 연수할 거고, 연수 이수하신 분들이 계속 늘어나실 거고, 그러면 여기저기서 팀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저희는 믿습니다. 그래서 현장 중재뿐만 아니라 교사 훈련에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침묵.

그건 숙연한 침묵이었다.


연수 마지막 날,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은 이거셨다.

“보검이 있는데... . 전파가 안 되요. 팀이 되어야 합니다. 전파해 주세요, 선생님들.”

그래. 처음도 너무 처음이라서, 원래 어렵고 힘든 거라서, 아직은 팀이 되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정말 할 말 많지만, 소화되지 못해 쌓이고 쌓인 게 그득하지만 시작했으니 일단은 마음 열어보려 한다. 겨울 방학에 이번만큼의 연수가 또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한 차례는 끝나서 후련하다. 하아. 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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