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독한 편식 어린이였다. 맛 없어서 안 먹고 색깔이 이상해서 안 먹고 냄새가 이상해서 안먹는다 떼를 썼다. 미운 일곱 살의 변덕을 아빠는 귀 기울여 들었다.
“애가 먹고 싶은 걸 줘야지!”
엄마에게 당당하게 소리치고는 퇴근길마다 요즘 애들에게 ‘핫하다’는 온갖 음식을 사왔다. 지금은 생각만해도 침이 흐 르는 피자, 햄버거, 치킨을 입 앞으로 갖다 바쳐도, 나는 그저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빠가 바친 음식이 드디어 매하신 따님의 선택을 받았다!
“아빠가 끓여준 라면이 제일 맛있어!”
라면 끓이기를 아빠에게 떠넘기기 위한 꼼수가 아니다. 이 것은 레알 팩트다! 딱히 어떤 점이 특별하다 꼽을 수도 없고, 엄마가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입버릇처럼 얘기하지만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는 월드 클라스다!) 아빠의 라면을 맛 본 이후로, 라면 끓이기 담당은 당연 아빠다. 그 때마다 엉덩이 기싸움(누가 먼저 일어날 것이냐) 한 판은 필수로 선행되어야 하고, 영혼을 끓어올린 서비스 멘트가 뒤따라야한다. 어차피 라면을 끓일자, 아빠일지니.
요즘 세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 가족은 전형적인 가부 장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장의 말이 곧 법이다!’ 이런 분위기는 절대 아니지만, 어렸을 적 바라본 아빠는 집안일이라고는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가끔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처음 끓여준 라면의 맛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빠가 라면을 끓인다! 엄마보다 더 맛있게!
아빠의 모습은 선입견이었다. 아빠는 오랜 자취 생활로 본인만의 라면 철학이 있었다. 물의 양은 눈대중으로 척, 수프 를 먼저 넣어 팔팔 끓이고, 면은 꼬들꼬들하게. 마늘과 파를 넣고, 콩나물까지 있다면 땡큐. 계란은 터지지 않게 마지막에 퐁당! 확고한 취향을 가진 아빠의 라면은 나의 취향도 저 격했다. 라면의 맛 때문인지 주방에 서 있는 아빠의 모습 때문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날 먹었던 라면은 그야말로 ‘인생 라면’이었다.
엄마의 회사 일로 인해 아빠와 단 둘이 밥을 먹은 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다른 가족들에게도 무척이나 흔한 일이겠지만, 별 것 아닌 듯한 둘 만의 식사 중 몇몇은 이상하리만치 기억이 선명하다.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에서 슈트를 풀 장착한채 좁은 분식집에 꾸겨져 라면을 들어 올리던 어색한 어깨나, 계란찜이 맛있었던 교외의 한정식집 가는 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어느 날의 라면 한 끼가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 것은 아빠가 느꼈을 긴장감이나 약간의 사명감(?)이 어린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부족한 요리 실력으로나마 딸에게 가장 따뜻한 한 끼를 지어주고, 엄마의 빈자리를 티 나지 않게 가득 메워주고 싶은 진심 어린 애정말이다.
‘라면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끓여주겠어!’
이런 아빠의 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내가 아빠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은 울퉁불퉁한 모양의 끝이 물러진 딸기뿐이었다. 편식쟁이 주제에 비싼 딸기를 혼자 독식하곤했다. 제일 못생긴 딸기 두세 개를 남기고는 뻔뻔하게 말했다.
“이거는 남겨놨다가 아빠 줄래!”
그 딸기를 보고도 딸바보 아빠는 기뻐했을 것 같다.
이제는 자취 만랩이 되어 라면을 주식처럼 먹으면서도 아직 아빠에게 라면을 끓여준 적이 없다. 똑같이 엄마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아빠 앞에서 남녀평등을 외치기만 할 뿐이다.(설거지는 아빠가 하라!) 이번 생일만큼은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고 싶었는데, 얼굴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미역국만큼 꼭 내 손으로 대접하고 싶다. 아빠의 첫 라면이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된 것처럼, 나의 미역국도 아빠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