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

by Doyle

12월 3일 21:56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서 밥을 먹으며 쉬고 있었습니다. 이번 달부터 하려고 마음먹은 엑셀 공부도 좀 하려고 노트북을 켜자마자, YTN 국회팀 단톡방에 후배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용산이 뭐 긴급발표 하는 모양입니다."


각 방송사에 기자회견 생중계를 준비하라는 공문이 발송됐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시간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밤 10시? 밤 10시 반?

내용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야당이 본회의에서 대폭 깎인 예산안과 검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굳이 야밤에 긴급 기자회견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단 내용을 들어보려고 유튜브 생중계 방송을 켰습니다.


12월 3일 22:00


22시에 한다고 했던 기자회견은 10분, 15분까지 계속 미뤄졌습니다. 무산됐다는 얘기까지 들려오면서 혼란과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23분, 대통령이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격앙된 말투로 힘줘 말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잠시 메신저를 보느라 한눈을 팔았는데, 귓가에 한 마디가 꽂혔습니다. "우리 국회는 지금 범죄자들의 소굴이 됐고...."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다고? 귀를 의심하는 찰나, 더 끔찍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길고 긴 계엄의 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2월 3일 23:00


퇴근했던 국회팀 기자들 전원 출근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회사로 갈 수 있는 사람은 회사로, 국회가 더 가까운 사람은 국회로 가야 했습니다. 저도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다시 챙겼습니다. 언제라도 중계를 탈 수 있으니 셔츠를 입고, 가방에는 핫팩을 가득 챙겼습니다.

이동하면서 기사를 써야 할 수 있으니 차는 운전하지 않기로 하고,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 기사님은 계엄 얘기를 들었느냐면서, 윤석열이 화가 많이 났는가보다고 말했습니다. 한 귀로 흘리며 불안하게 국회로 향했습니다.


12월 3일 23:30


국회 정문은 이미 경찰이 두 겹 세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국회 출입증을 보여주면 통과시켜 준다길래, 가방에서 출입증을 꺼내 손에 꼭 쥐었습니다.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출입증만큼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문을 통과한 뒤 2~3분이 지나자마자 통제는 더 강화됐습니다. 출입증을 보여주고 들어왔던 국회의원과 보좌진도 이제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뉴스 속보를 본 시민들까지 모이면서 국회 앞은 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12월 3일 23:45


국회 정문으로 들어와 상황을 잠시 지켜보다가, 전화연결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기자실이 있는 소통관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일찍 잠들어서 뉴스를 보지 못한 어머니는 제가 전한 소식에 깜짝 놀라셨습니다. "근데 윤석열은 왜 그랬대?" 연신 묻는 어머니에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당분간은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시라고 당부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엔 헬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헬기가 낮게 날면서 들리는 육중한 소리.

헬기는 점점 낮아지며 국회 뒤편을 향했습니다. 불안감이 확 엄습했습니다.


12월 3일 24:00


소통관 기자실에는 불만 켜져 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화연결 원고를 쓰려고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리자마자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쓰지? 이제 국회 출입 고작 두 달째인데, 이런 초유의 사태를 내가 기사로 쓸 수 있을까? 나도 이 상황이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기사를 쓰지? 내가 알고 있는 게 맞기는 한가?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뭐라도 써야 했습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선후배 기자들의 보고를 보면서, 여당과 야당 상황을 한 줄 한 줄, 짧은 단문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원고를 본 국회 반장 선배는 제가 소통관에 있다는 사실 등 현장 상황을 첫머리에 넣어 원고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첫 전화연결은 날을 넘겨 0시 30분에 처음으로 나갔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2122795?type=journalists


12월 4일 0:30


보통은 다음 전화연결 시간이 미리 정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원고가 준비되는 대로 계속 생방송 연결을 해야 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계엄군이 밀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까 본 헬기에 타고 있던 군인들임을 직감했습니다. 밤늦게 뉴스를 본 친구들에게서도 '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는 메시지가 밀려들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있는 후배에게서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전해졌습니다. 여야 보좌관, 국회 직원들이 책상, 의자 등으로 계엄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본청 정문을 막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국회가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해제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의 동의, 즉 전체 의원 300명의 절반이 넘는 최소 151명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의원 151명이 먼저 모이느냐, 계엄군이 먼저 본회의장을 점령하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본회의장에 들어간 기자가 의원들의 수를 하나하나 세고, 151명은 넘을 것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사회를 봐야 할 우원식 국회의장도 본회의장에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국회방송에서 중계하는 본회의장 상황을 유튜브 생중계로 틀어두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화연결에 반영했습니다.


12월 4일 1:00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본회의장에는 190명의 의원이 모였고, 이제 본회의를 개의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설마 비상계엄 해제에 반대하는 의원은 없을 테니까요.

우원식 의장은 일단 본회의 개의를 선포하고 나서도, 결의안이 발의돼 본회의에 상정될 때까지 한동안 뜸을 들였습니다. 일부 의원이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고 재촉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엄을 막지 못하면? 내가 쓰는 기사도 곧 계엄군의 검열을 받게 될 텐데, 지금까지 내가 쓴 기사로 트집 잡히는 건 아닐까?

마침내 계엄 해제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습니다. 190명 전원이 찬성했고, 표결은 1분 만에 끝났습니다. 우 의장은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리고, "이제 계엄은 무효가 됐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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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3:00


상황은 이제부터였습니다. 여야 대표를 비롯해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메시지가 쏟아졌고, 그에 따라 원고도 계속해서 수정해야 했습니다. 밤이 늦어가면서 목소리도 점차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아침 7시에 출근했으니, 비상계엄 전 몇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24시간째 근무에 접어드는 중이었습니다.

제발 해야 떠라... 해가 뜨면 끔찍한 밤도 다 끝날 것 같았습니다.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12월 4일 08:00


마지막 전화연결을 마치고 나자 잠이 쏟아졌습니다. 밤새 7~8번은 전화연결을 한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 네 번 해도 많은 편인데 8번이라니.... 퇴근 지시를 받고 소통관 밖으로 나오자 해가 떠 있었습니다. 하늘은 밤사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늘할 정도로 맑았습니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본청을 한번 둘러봤습니다. 깨진 유리창, 곳곳에 널부러진 집기..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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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비상계엄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아찔해지는 그 밤...

충격이 컸던 만큼 그 후폭풍은 더 클 것 같습니다.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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