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by Doyle

“아, 밥에 콩 넣지 말라니깐!”


어린 시절에는 콩밥이 그렇게 싫었다. 검은 콩 때문에 거무튀튀해진 밥알, 입에 넣을 때 부드러운 밥 속에 느껴지는 꺼림칙한 이물감, 한번 씹으면 입 안에 퍼지는 퍽퍽한 식감… 그날도 나는 밥상머리에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 한 장을 가져와 보여주셨다. 새까만 피부에 앙상한 팔다리, 그와 대조되는 불룩한 올챙이배. 내 또래로 보이는 사진 속 친구는 툭 튀어나온 눈으로 슬프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면서 이제는 그때만큼의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그때의 미안한 감정은 지금까지도 불현듯 등장한다.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출 때, ‘대박’을 찾았다며 평범한 여자들의 ‘야동’을 공유하는 친구를 볼 때, 회식 후 2차로 ‘룸’에 가자는 부장님을 볼 때,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 옛날 느낀 미안함은 어느새 죄책감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삶이 라이브로 펼쳐진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세상 모든 곳을 볼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요즘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라이브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연출하는 라이브, 또는 조연으로 나오는 라이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그 라이브는 단지 소설 속 이야기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혹시 울리는 옆에서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를 애써 외면한 채 마치 모래 속에 머리를 묻은 물고기처럼 “내 물은 맑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일탈이 알려질 때마다 “도매금으로 몰려 억울하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린다. 그런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다면, 이러한 몇몇 미꾸라지가 날뛰지 못할 환경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고 외치는 것보다는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 사진을 본 내가 그날 콩밥을 다 먹은 것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정희, 전두환, 반민특위, 여순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