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텔베인에서 시작된 유럽에서의 생활
3월의 네덜란드의 날씨는 정말 춥고, 다시 겨울로 되돌아 가는 것 같았다.
2017년 3월 몰타 어학연수를 하면서 처음 방문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로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시작된 네덜란드의 날씨는 내가 알고 있던 네덜란드의 날씨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3월 중순의 네덜란드 날씨는 영국 런던의 날씨와 같았다.
일 주일 내내 햇빛을 보지 못했을 때도 있고,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맑았다가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날씨가 싫어 어학연수도 영국 런던을 과감히 배제했던 나였는데..그런 날씨를 네덜란드에서 만나니 여행과 사는 건 정말 다르구나를 많이 느꼈다.
내 나라가 아닌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여행으로 왔다고 해서 이곳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건 섣부른 판단임을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며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의 나라인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 수단이다.
이 나라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건 비싼 교통비로 인해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생활 방식에서 그렇게 되었다.
자전거 공포증이 있던 나에게..겨우 조금 탈 줄 아는 정도인 나에겐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타기는 애초에 포기했던 것 중에 하나였다.
자전거 신호등도 따로 있고, 자전거 법규도 따로 있고, 자전거 관련한 장비도 잘 갖춰져 있는 곳이지만, 이런 법규에 대해 잘 모르고 타는 외국인들로 인해 자전거 사고도 종종 일어났다.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인으로 낯선 그 나라의 법규와 생활에 적응하고 현지인처럼 1년 비자를 받고 산다는건 쉽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네덜란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암스테르담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하길 바라지만, 암스테르담에서 그것도 길어야 1년 생활하는 외국인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집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정도로 힘들다.
네덜란드 현지 친구들마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네덜란드인은 거의 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매일 수없이 방문하는 외국인과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에 포기하고 네덜란드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는 네덜란드인이 많다고 한다.
네덜란드 정부가 매년 오르는 집값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주거보조금이라는 정책을 내놨지만, 실상 혜택을 보기는..글쎄..한마디로 쉽지 않다.
이 주거보조금에도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쉐어하우스에 거주할 경우, 불가능.
내 나이 기준으로 연간 소득 22,200 유로(28,416,000원)이하이며, 월 임대료는 223,42~710,68유로 이어야 하는 등 다양한 기준에 부합해야 받을 수 있다.
많은 네덜란드 워홀러들이 주거보조금은 당연히 쉽게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네덜란드 워홀러로 있으면서 듣기론, 이제 이런 혜택 기준에 네덜란드어 구사 가능한 외국인에게 지원을 해준다는 조건이 곧 추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맞다고 본다. 내가 네덜란드인이었다면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자신의 나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모든 혜택을 공평하게 준다면 외국인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듯 자국민으로서가 아닌 외국인으로 한 나라에 정착하긴 쉽지 않지만, 워홀러로서 1년간의 네덜란드와 체코에서의 생활은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나의 첫 네덜란드의 도시, 암스테르담 근처인 암스텔베인은 암스테르담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텔베인은 주거지이다 보니 관광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북적임은 없지만, 집 바로 앞에 있는 쇼핑몰, 마트, 버스터미널, 트램 정류장 등이 근처에 위치해 있어 정말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여행으로 네덜란드를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지만, 네덜란드인들이 왜 암스테르담이 아닌 다른 도시에 더 많이 거주하는지 점점 이해가 되었다. 여유 속에서 빠른 걸음으로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워홀러로서 마저 암스테르담을 점점 멀리하는 네덜란드인들이 어느 샌가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네덜란드 워홀러로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시작하고 적응하며 지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