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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0. 2022

순간에게 보내는 찬사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아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간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리고 그 순간들로 살아간다. 당신의 삶을 붙잡아주는 순간은 어떤 순간인가. 스쳐 지나가는 향기 하나에,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입고 먹는 그 찰나의 순간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켜켜이 쌓아 올린 순간들이 모이고 또 모여 당신의 하루를 만들고 나의 하루를 만들고 그리고 그 하루가 또 흩어진다. 꼭 모래사장처럼. 


 공연을 좋아하고 순간들을 사랑하는 내가 꼭 공연을 보고 난 후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물론 관극일지를 작성하고 후기를 쓰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는 일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먼저 내가 하게 되는 일 한 가지는 바로 음악을 듣는 일이다. 이때 음악은 그 공연에 나왔던 관련된 넘버들보다는 내가 그 극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듣는다. 예를 들어보자면 뮤지컬 팬레터의 경우 엔플라잉의 'FLOWER FANTASY'라는 곡을 들었다. '흩날려라 꽃잎들아 널 떠올리지 못하게 절벽 끝까지 피어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딱 첫 가사를 듣는 그 순간부터 나를 무대에서 꽃잎과 원고지가 흩날리는 그 공간으로 나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뮤지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경우는 몽니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라는 곡을 들었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갈 때에 하얀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겠지' 이 가사가 마치 더욱이 지치고 지쳐가 죽음마저 받아들이게 된 골드문트가 떠올라 그 곡을 괜스레 찾아 듣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곡들은 듣는 그 순간, 내가 그 곡을 듣게 된 그 우연의 일치 하나만으로 나를 내가 필요한 그 순간으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또 기억하겠지. 그저 남들은 공감 못할 그 순간이라 하여도, 나의 순간을, 나의 하루를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그때의 그 순간을


 누가 사랑은 벼락같이 찾아오는 거라 그랬던가. 꼭 순간 역시 벼락같이 찾아온다. 벼락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그 순간 역시 갑자기 찾아온다. 내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벼락을 맞는 것이든, 아님 그냥 허허벌판에 서있다가 벼락을 맞는 일이든 갑자기 그냥, 내가 대체로 원하지 않던 순간에 그 벼락은 찾아온다. 때때로 옷이, 음악이, 향기가, 사소한 단어 하나가 나에게 순간이 되고 그리고 또 스러져간다. 마치 버튼이 있는 것처럼. 문제는 이 버튼이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일이란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기쁨이, 때로는 누군가의 고통이, 때로는 누군가의 슬픔이 그냥 버튼이 '톡'하고 눌리면 켜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버튼을 붙잡고 살아간다.

 

 생각보다 우리는 그 순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뭐, 아직 인생을 논하기에 어린 나이일런지 모르겠지만, 일희일비하는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참 나는 금방 잊어버린다.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쉽게 잊어 보내고, 쉽게 떠나보내는 편이다. 정말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때때로 찾아오는 그 찬란한 순간이 나에게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그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그 공간을 나에게 선물같이 전달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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