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참 좋은 말이라며 나에게 답을 건넸다. 실제로 나는 행복해지기 쉬운 사람이다. 종잡을 수 없고 충동적인 행동과 소비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아마도 더 그럴 것 같다. 친구들은 먹이고 재우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이니 얼마나 기르기 쉬운 생명체인가.
소확행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은 자기 위로밖에 되지 않는다며, 기왕이면 확실하고 거대한 행복을 추구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저 그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으로 만족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며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나는 소확행이 유행했던 시간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고작 그 정도라, 거대하고 확실한 행복을 맛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의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의 의견이 맞을지도 모르지. 다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러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점에서 의견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아주 우연히 마주한 맛집이라던지,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사 먹는 일이라던지, 아님 그냥 날이 좋은 하루라 할지라도 그냥 유독 힘들었던 나의 하루를 견디게 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건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이미 나의 삶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버거울 텐데 이 무게를 잠시 잊게 해 줄 행복의 순간조차 거대한 무언가를 꿈꿔야 하는 것일까.
나도 당연히 돈을 많이 쓰면 좋다. 어느 누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일등석도 타보고 싶고, 돈 걱정하지 않고 쇼핑하고, 결제하고. H사의 핸드백을 집어던지면서 인생은 외로워 같은 소리도 해보고 싶다.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룸서비스도 마음껏 시켜보고 싶다. 그런 행복을 나라고 왜, 그러한 거대하고 확실한 행복을 원하지 않겠는가. 다만 나는 2000원짜리 행복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낀다는 것이다. 2000원의 그 행복이 나를 춤추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리게 하기도 한다. 200만 원의 행복이 그러하듯이.
학생 때 친구들과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사 먹을 때 나는 늘 같은 라면을 고집했다. 950원짜리 큰 컵 라면. 내가 좋아하는 라면은 따로 있었는데 저 라면을 사 먹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큰 컵인 라면 중에 가장 저렴했으니까. 사실 100원만 더 내면 더 좋아하는 라면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왜 그렇게 구질구질했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직도 그런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는 저렴한 행복을 좋아하는 걸까. 그렇지만 뭐 어떤가. 100원씩 아껴서 사 먹던 요구르트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돈을 통해서 얻는 행복의 횟수가 얼마나 될까. 결국 우리의 인생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행복들은 소소한 순간들의 행복이다. 그러니 그 순간의 사소한 행복들을, 그 저렴한 행복들을 좀 더 아껴주면 어떨까. 나의 하루, 그리고 당신의 버거운 하루의 순간의 잠시라도 숨통을 틔어줄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저렴한 행복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