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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5. 2022

선선한 시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시간이 선선히도 흘러갔다.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사람은 늘 과거를 먹고 산다고야 하지만 유독 이 모임을 하는 날이면 흔히 말하는 '라떼'인간이 되어버린다. 함께 그 순간을 공유했고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러하다만 20대 초반 달리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기에 그 선선한 시간이 갑자기 온다는 이야기도 없이 불쑥 찾아온 기분이 든다.


 오래전부터 가져온 모임이 있다. 학생 때 참가했던 대회의 수상자들이 모여있고 성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모임에 참가하게 된다. 사실 친목하는 모임인데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또래들이 모여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모임이었다. 나의 대학교 1학년을 참 찬란하게 만들어줬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한 동네에서 산, 내 동네에도 친구가 별로 없는 나에게 전국 각지에 사는 친구를 만들어준 특별한 모임이다.


 진짜 세상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모임이다. 20대 초반 술도 자주 마셨고 놀러도 다녔고 여러 커플들도 탄생했다. 대부분 비슷한 학과에 재학하기도 했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공통의 이야깃거리들이 있었다. 참 특이한 사람도 많이 만났더랬다. 서로 만나면 네가 더 특이하니 아니 네가 더 특이하니 하며 투닥거리고 결국은 자리에 없는 누군가가 가장 특이한 사람으로 결론지어지던. 나의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도  달에 한 번씩은 모이던 그런 모임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 모임은 참 특별한 모임이 되어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전국 각지에서도 달에 한 번씩은 모이던 모임은 시간이 지나며 간간히 겨우 볼 수 있는 모임이 되었고 이제 이야기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직업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다만 여전히 모임의 과거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말이다. 술을 짝으로 마시던 온몸의 장기가 간으로 이뤄져 있던 것 같던 오빠는 일을 하고서 먼 거리를 온 탓에 맥주 두 잔에 피곤하다며 일찍 자리를 파하자 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갑자기 문득 찾아온 선선한 시간의 흐름이, 때로는 싸늘하기도 했고 때로는 더위를 식혀주던 그 시간의 흐름들이 어느새 나를 떠밀어 여기까지 데려왔다. 정신을 차리니 금요일이 되었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부서져간 나의 시간들에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만 같다.


 4학년 때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길을 틀어서 취업을 했다. 정신없이 첫해를 보냈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으로 휴가를 나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 달짜리 휴가가 꼬박 2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나의 첫 직업이었으며 곧 돌아갈 직업으로 보낸 시간보다 잠시 머무는 기간 동안 가지게 된 직업으로 보낸 시간이 더 길어진 것이다. 선선히도 흐른 시간 덕이리라. 아직도 나는 첫 휴가를 나왔을 때의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오늘의 나는 덥고 추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이 모여 선선한 시간이 되어있음이 나의 덥고 추운 이 시간들을 제법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당신의 흘러간 선선한 시간들이 나의 흘러간 선선한 시간들이 비록 오늘을 살아야 할 우리를 어제에 머무르게 한다한들 어떠한가, 오늘 역시 어제가 되어 흘러갈 것을. 때때로 오늘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 어제가 없었더라면 오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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