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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22. 2022

취향의 발견

안녕 반가워 처음이지

 취향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그냥 무슨 벼락 맞은 것처럼 왔다가 기억의 조각들처럼 남아있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켜켜이 쌓아온 취향의 조각들은 어느 순간 그 색을 완전히 다르게도 바꾼다.  

 나름 취향에 대해서는 확고한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나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취향에 대해서 딱히 의심을 해보지를 않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 하지 않는가. 취향은 끝없이 발견되고 발전하는 것임을 최근에 들어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취향을 조금 적어 보려 한다. 아마 내년의 혹은 이후의 내가 보면 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 꼭 타임머신처럼 꺼내보아야지.


 가장 먼저 '어? 내가 이런 걸 좋아하네'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2019년의 여름의 이탈리아였다. 그 여름 동안 나는 몰랐던 취향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미술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모네와 베르메르를 이야기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인상주의 시기의 화가들을 선호했고, 사실에 가깝고 예쁜 그림들, 한눈에 들어오고 해석할 수 있는 그림들을 선호해왔다. 그런 나에게 현대 그림과 중세시대의 그림은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중세시대의 그림은 선호하게 되다니!!! 중세시대의 그림은 사실 그림을 보려는 것보다 글을 읽거나 혹은 퍼즐을 조립한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쉽다. 각 성인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이콘이라 부르는 무언가를 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열쇠를 들고 있어서 중세시대의 그림을 볼 때 열쇠를 들고 있다면 그 사람은 베드로인 것이다. 물론 수많은 성인 및 성녀들이 존재하기에 가끔 겹치게 되는 경우들이 있지만 그 사람이 왜 해당 물건을 들고 있는지를 알아가다 보면 그것이 너무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 똑같아 보이는 중세시대의 미술에도 각각의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해당 지역에 사는 민족들이 어떤 모습인지 혹은 어떤 사람들을 마주 했는지에 대한 당시의 시대상이 비슷한듯한 그림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내가 그 해 여름 찾은 두 번째 취향은 나는 여름이 좋다는 것이다. 여름과 겨울 중에 고르라면 단연코 겨울이었다. 겨울은 옷을 껴입을 수라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름은 벗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에어컨도 제대로 없고 너무 더워서 고생스러웠던 그 여름은 내가 여름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 이탈리아의 바다는 그 자체로 완벽했다. 별다르게 가서 수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베드와 파라솔을 하나 빌려 누워서 맥주나 한 캔 마시고, 가지고 온 책을 조금 읽고, 스윽 물에 들어가서 저 안에까지 들어갔다 나와보고, 깜박 잠들어서 다 까지도록 구워지고, 근처 카페에 가서 피자 두 조각 정도를 사서 먹던 그 해 여름이 뭐가 그렇게 특별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왜 그 더운, 체감온도가 40도가 넘어가는 그 더운 여름의 이탈리아에서 왜 이탈리아 사람들이 여름을 기다리고,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지 절실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걸 좋아하네?' 했던 순간은 코로나 이후로 가지게 된 취미인 뜨개질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손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데 재능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내가 뜨개질을 취미로 가지게 될 줄이야! 뜨개를 시작하고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가까운 사람들은 네가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니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로,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장 놀라운 취향의 변화였다. 처음의 시작은 소소하였다. 그때 일하던 곳에서 갑자기 코바늘 수세미 뜨기를 배웠고, 대바늘과 달리 무념무상으로 할 수 있는 무엇보다 안뜨기가 없는 코바늘의 세계에 적응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모자와 가방을 한가득 만들어 나눔을 하고 난 뒤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 졌는데 같은 사이즈의 조각을 만들 때는 대바늘이 실이 덜 들고 코바늘이 훨씬 탄탄하다는 말에 목폴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벌 정도는 직접 떠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을 했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뜨개옷이다. 어느새 내가 뜨개질을 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 되었고, 내 방 한구석에는 수많은 실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자연스레 뜨개를 하다 보니 내가 꽈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나 혹은 의외로 핑크색을 좋아한다는 사실 등 또 다른 취향의 발견을 불러왔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발견한 취향은 바로 뮤지컬이다. 사실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좋아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워낙에 문화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하여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했을 때의 목적은 오로지 해리포터, 애프터눈티 마지막으로 뮤지컬이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관련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언젠가는 따로 풀어서 이야기를 진행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극장극 그리고 한국에서의 공연보다는 오리지널 즉 흔히들 내한 공연이라 말하는 공연이 취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봤던 뮤지컬은 거의가 내한 공연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본 뮤지컬에 아주 대차게 감겨버렸다. 사실 나는 번역투가 싫었던 모양이다. 따로 관극일지를 길게 올리게 될 뮤지컬 팬레터는 오롯이 인식 가능한 언어로서의 뮤지컬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해 주었다. 특히 그 극의 경우 배우들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그 연기가 저절로 다양한 배우들의 공연을 보게 만드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자연스럽게 여러 차례 보게 만드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고, 혼자 살지도 않기 때문에 모든 공연을 챙겨 볼 수 없었지만 왜 사람들이 똑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고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고, 이 공연을 보면 빠져든 배우들을 보고자 자연스럽게 다른 극들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네이처 오브 포겟팅을 보고 왔고 다음 달에는 고흐와 쇼맨을 보려 한다. 그리고 이 극들 말고도 인터넷 중계로 만나 볼 수 있었던 트레이스유와 와일드 그레이 등을 보고 또 다른 중계들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현장도 아니고 인터넷으로 돈을 주고 공연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심지어 같은 공연을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8번씩 같은 공연을 보게 되었다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공연과 많은 배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짜릿하기만 하다. 


 수없이 변화하는 시간들 속에 때때로 나만은 중심을 지키고 싶고, 자신을 지키고 있지 못하는 순간들에 대한 자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만나고 또 다른 길을 찾게 될지 모르니 소용돌이를 지나치게 두려워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해보면 어떨까. 누군가는 새로운 취미를, 누군가는 새로운 맛집을 누군가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취향의 발견은 그러한 것이 아닐까, 당신을 즐겁게 해 줄, 아침이 혹은 어느 요일이 기다려질 그러한 특별함 말이다. 이 특별함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에게도 또 찾아와 주길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존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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