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며 얼굴에 쌓인 모래를 털어내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by 서주운

사막을 좋아한다. 20년쯤 전에 처음 『서재 결혼 시키기』를 읽었을 때 확실하게 알았다. 저자인 앤 패디먼은 어마어마한 독서광인데 극지방 탐험에 관한 책만 64권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자신이 극지방을 탐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극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한다.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풍경은 극지방이지만 남편인 조지가 좋아하는 풍경은 열대우림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한 침대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상상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풍경을 떠올려 봤다. 단번에 떠오른 풍경은 사막이었다. 황금빛 모래사막. 줄곧 사막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사막에 가 본 적은 없다. 나에게 사막은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작열하는 태양과 공허한 바람과 노래하는 모래가 있는 공간. 어린 왕자가 ‘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곳. 선지자가 태어난 곳. 모래 언덕 듄DUNE이 있는 곳. 폴 아트레이데스가 무앗딥 우슬이라는 이름을 받은 곳.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장소다. 사막의 풍경이 이상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중학생 때인 것 같다.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이 사막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누군가로부터 사막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과학 선생님도 국어 선생님처럼 미혼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국어 선생님처럼 수업 시간이 항상 재미있었다. 하지만 조용조용하고 차분했던 국어 선생님과는 다르게 과학 선생님은 호탕하고 유쾌하신 분이었다. 키가 약간 작은 편이셨는데 그래서인지 시험을 볼 때면 교탁 위에 올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감독하셨다. 교탁 위에 앉은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항상 귀 조금 아래까지만 내려오는 짙은 검은색 머리를 유지하셨다. 피부가 하얀 편이었는데 짙은 머리색 때문에 더 하얗게 보였던 것도 같다. 턱선이 도드라지게 각진 얼굴형 때문에 강단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크진 않아도 단호해 보였지만 웃으실 땐 얇아지며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뒤 돌아오신 선생님의 피부는 조금 어두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방학 동안 실크로드를 따라 달리는 기차 여행을 하고 오셨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든 재미나게 해 주신 분이라 여행 이야기는 더더욱 재미있었다. 기차에서 먹고 자야 했는데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기 때문에 언제나 어디선가 모래가 흘러 들어왔다고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에 모래가 쌓여 있어서 동행인과 서로 얼굴에 쌓인 모래를 털어주며 아침 인사를 했다고 하셨다. 밥을 먹을 때에는 밥 반 모래 반인 밥을 씹어 삼켰다고 이야기하셨다. 사막 여행을 할 때에는 우산을 꼭 챙겨야 한다고도 강조하셨다. 비가 올 리가 없는데 왜일까 싶었는데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기차가 잠시 멈추면 모래를 파고 우산으로 가림막을 만든 다음 볼일을 봐야 했다고 하셨다. 교실을 가득 채운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모두 꺄르르 꺄르르 웃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얼굴에 쌓인 모래를 털어줘야 한다는 그 이야기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상상만 한 그 모습이 사진이라도 찍은 듯 머릿속에 남아 종종 떠오른다. 서로의 얼굴에 쌓인 모래를 털어주며 맞이하는 아침. 가까이서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오겠지만, 사막과는 머나먼 곳에서 문득문득 떠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일이 무언가 신성한 의식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사막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이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 개가 넘는 나라에 가 봤지만, 아직 사막은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 영화 듄에 나오는 것 같은 모래사막에 가보고 싶다. 함께 간 누군가와 서로의 얼굴에 쌓인 모래를 털어주며 아침을 맞이해보고 싶다. 그곳에서는 모래와 함께 나의 모든 가면을 털어내 버리고 진정한 내가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앤 패디먼, 『서재 결혼 시키기』, 정영목 옮김, 지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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