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우리 시가 더 좋은 것이 많지요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by 서주운

대학교 수업 중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영미 시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는 문학이나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강한 이유도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딱히 시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며 영미 시, 영미 문학과 사랑에 빠졌다. 교수님은 지적인 인상이 강한 여자분이었는데 알려주시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존 던, 윌리엄 블레이크, 워즈워스, 예이츠, T. S. 엘리엇, 이런 이름들을 알려주셨고, 이들이 쓴 시를 가르쳐주셨다.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세계였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세상이었다.


교수님이 말해주시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종종 수업이 끝난 뒤 이런저런 질문을 하곤 했다. 한번은 질문 끝에 내가 영미 시가 너무나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미 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멋진 것 같다고 말했다. 돌아온 교수님의 답이 의외였다.

“시는 우리 시가 더 좋은 것이 많지요.”

당시 나는 영미 시에 푹 빠져있던 터라 교수님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그 후로도 계속 영미 시가 최고라고, 최고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말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계속 품고 있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문학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영미 시 수업이다 보니 시도 소설도 외국 작가의 작품을 주로 봤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어쩌다 손이 가면 읽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작년에 정독 도서관에서 연암 박지원의 소설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배운 작품 모두가 뛰어났지만, 그중에서도 「민옹전」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연암이 민옹에게 바치는 시의 마지막 행이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어도 문학은 영원불멸한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의 마지막 두 행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옹을 위해 전을 쓰노니
아아, 죽었어도 죽지 않았어라.
我爲作傳 嗚呼死未曾


인간이 숨을 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이 시는 살고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교수님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시는 우리 시가 더 좋은 것이 많지요.”

그 말의 의미가 이제야 궁금해졌다. 확인하고 싶어졌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때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지, 어쩌다 영미 문학을 전공 하셨는지, 가르치시는 작품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지, 지금은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좋아하는 우리 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하며 교수님과 친구가 되고 싶다. 영미 시뿐 아니라 우리 시도 배우고 싶다.


교수님을 다시 만나는 일은 어렵겠지만, 혼자서라도 우리 시를 배우고 싶다. 늦었지만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


박지원, 『연암 소설집』, 박지원 지음, 박수밀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소네트』, 피천득 옮김, 민음사, 2018.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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