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대한민국은 선행 학습 공화국이다. 지금은 더 심하겠지만 나도 자라면서 선행 학습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들었다. 그나마 초등학생일 때는 사교육이 아직 성행하지 않았지만, 중학생쯤부터 선행 학습이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선행 학습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예습은 미덕이라는 생각을 하며 항상 예습 복습을 하기 위해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부모님과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나는 칭찬이 좋았던 성실한 학생이었고 목표로 했던 대학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 내내 꿈꿨던 대학교에서 첫 학기를 마쳐갈 때, 예습 복습이 미덕이라는 내 생각을 산산이 부숴버린 이야기를 들었다. 지도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였다.
지도교수님은 수학과 교수님이었다. 흰머리는 없지만 젊어 보이진 않았으니 마흔 정도였던 것 같다. 남자분이었고 딱 수학과 교수님이라는 이미지 그대로, 생각이 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분이었다. 내 전공이 수학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좀 특수해서 전공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입학했다. 1학년 때 지도 교수님은 전공과 무관하게 무작위로 배정받았다. 지도교수님의 주 역할은 학생 면담이었다. 한 학기에 몇 번 담당하고 계신 1학년 학생을 모아 그룹 면담을 해주셨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했던 면담 시간에 교수님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으셨다. 학생 한 명이 2학기에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 중 하나인 수학 과목을 예습할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어렵다고 유명한 과목이었다. 나는, 교수님이 그 학생을 당연히 칭찬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미리 공부하겠다니 얼마나 성실하고 착실한 학생인가. 놀랍게도 교수님은 그 학생의 대답이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칭찬의 말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고 있었던 입은, 조금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열리며 말씀을 꺼내셨다.
“물론, 예습해서 잘하는 것도 좋지. 그렇지만 말이다, 대학교의 커리큘럼은, 그 학기에 주어진 시간만큼만 공부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짠 것이라, 굳이 예습하지 않아도 그 과목을 수강한 학기에만 공부하고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대학 생활이지. 예습하기보다는 방학 동안에는 조금 다른 활동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만나온 모든 선생님은 예습을 장려했다.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교수님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를 이야기하고 계셨다. 미리 공부하지 않고 정해진 학기에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기본 바탕에 관해 이야기하고 계셨다. 일정한 기간 집중해서 공부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집중력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계셨다. 사실 당시에는 그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진심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
살다 보면 예습할 수 없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삶은 학교와는 달라서 내 앞에 어떤 과목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누구나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코딩은 인공지능에 맡기면 되고 인공지능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조만간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오겠지. 관계 또한 그렇다. 좋은 배우자가 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결혼하고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예습하기도 전에 아이가 생긴다. 갑자기 벌어지는 상황을 겪어내면서 그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실제로 헤쳐나가야 하는 일이 훨씬 많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이런 순간이 끔찍하게 싫지만, 싫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수학 교수님을 떠올린다. 예습하지 않고 부딪혀도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예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다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한 발 한 발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