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it Cochon Mar 14. 2019

설 연휴 마지막 날 밤의 기록

프로야근러 엄마의 깨달음

유달리 길었던 이번 설 연휴 동안 딸 주하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문득 이 시간이 더 오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하야~
엄마는 주하랑 이렇게
맨날 놀고 싶어!"

연휴 마지막 날 밤, 잠들지 않고 떼쓰는 아이를 혼내고 겨우 다독거려 재우고는 이내 눈물을 흘렀다. 이 아이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서. 그리고는 문득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돌멩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착한 어린이♡

일전에 여전도회 모임에서 가정과 직장을 다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라던 집사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그분은 헤드헌터이고 나는 마케팅 직군이니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직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던 그분의 믿음이 강한 전염성이 있었는지 잔상은 계속 남아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진심으로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워크 & 라이프 밸런스에 대한 개념은 늘 화제였지만 내게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혹여나 가능하다 하더라고 집안일에 방해받지 않고 회사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내가 집에 한 시간이라도 빨리 와서 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놓지도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일을 하는 것 또한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었기에 이내 일도 잘하면서, 빨리 집에 오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019년 들어서 회사에 '자율출근제'가 도입되었다.

아직 시스템은 미비하지만 자율적으로 오전 10시~오후 3시 코어타임을 지키면 2주 기준 80시간 내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있는 회사 선배님이 두 번째 육아휴직을 썼고, 가기 전에 나에게 "야근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염려 섞인 말을 전하고 가셨다. 한참 자율출근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론칭 시점과 맞물려 야근이 잦았더니 동료들 사이에서는 걸림돌(!)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도 은연중에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가 일이 좋아 그렇다고 한다. 그래, 싫다고는 말 못 하겠다. 누군가는 종특이라고도 하더라. 그 말도 맞다. 우리 아버지도 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워커홀릭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어머니도 "너는 아빠 닮아 그런다"하셨으니.


사실, 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남들만큼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고, 업의 특성상 주말 가리지 않고 촬영이나 행사, 캠페인 오픈을 앞두고 바빠지기 마련이다.


보통 때는 "이번엔 어쩔 수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겠지만, 오늘은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아마도 그건 어느새 훌쩍 커버린 5살 딸과 함께 연휴 동안 많은 추억을 쌓으면서, 이 행복을 더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회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그동안 남의 이야기였다 오늘에서야 내 맘에 와 닿은 말 때문일 것이다.


당장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다.


지금 시작된 이 여정의 끝이 어디일지 무척 기대된다.

2019년 2월 영덕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