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가라는 껍데기가 된다. 가라를 좇다보면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된다. 사회는 그런 껍데기를 경계한다.
아직 너가 조무래기여서 그렇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너도 내가 하는 말을 알게 될거야. 너도 결국 하층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다.
여전히 알맹이를 쫓는다. 알맹이를 쫓는 일의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쇠붙이에게 맞을 일이 많다는 점이다. 아주 작은 알맹이일지라도.
어떤 이는 싹을 키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껍데기는 다 같은 껍데기일 뿐이다. 남들과 달라질 수 없다.
아우성을 친다. 지근거리에서 서로 아우성을 치지만, 어떤 소리도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공허한 소리만이 한라에서 백두를 울린다.
너에게 아주 큰 시련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네가 알맹이를 포기하고 껍데기로 살아갈 뿐인 사람이 될거니까. 나는 오늘도 아주 작게 속으로만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 가라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