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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ahn Feb 08. 2020

트랜스젠더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관련한 잡상

200208

인권 전문가에게 있어서 나와 다른 존재에 관한 배려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정상(?) 인간으로 가져야 했던 권리를 포기하고, 비정상(?)인간으로 간주되는 인간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서 편견에 맞서고 필요하다면 신념을 위해 한 몸을 불사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편견을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은 않고 학계에서의 입지를 위해 비난의 화살을 엄한 곳에 쏜다면 구구절절한 비겁자가 되기 마련이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는 셈이다. 게다가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지지자에겐 틀린 것도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만드는 꼴이 된다.


인권 운동을 해왔던 분들의 깊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입장문을 통해 느끼는 바를 간단히 서술하려한다.


나는 인권 전문가가 행하는 운동의 범위가 작은 사회에서 정상 인간의 범주를 늘려나가는 정도에 불과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엔 명백히 차별이 존재하고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이론과 사회의 괴리를 분명히 인정하고 틀린 게 있다면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최근 트랜스젠더 여군에게 전역 판정을 내린 군의 사례나 숙명여대 입학 포기를 선언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사례를 보자. 두 사례는 성전환 여성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아 보이지만, 누가 적응하지 못하게 했냐라는 점에서 보면 다르다.


여군들은 트랜스젠더 여군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기존의 남녀 성 질서를 파괴하고 싶지 않은 군은 근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전역을 시켰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단톡방을 만들어 새로 입학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오히려 학교 측은 그 학생에 대한 입학을 허가했다.


인권 운동가들은 이 사건들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 휴머니즘 관점에서 서로 불편할 수 있지만 차별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함께 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권리를 줄이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나는 이 사건에 관해 페미니즘은 관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정상 여성의 범주에 있을 수 있는 성매매 여성은 지켜줘야할 대상이고,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의 권리를 좀먹는 남성의 변신일 뿐인가?


 인권 운동 전문가라고 해서 소수자 혐오를 하지 않다는 법은 없다. 다만 모순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폭력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트랜스젠더 남성이 교대의 남자 TO를 줄이는 상황이 오면 당신들도그렇게 반응하거나 혹은 지배적인 남성 사회에서는 그런 것도 받아줄 여유가 있다고 주장할텐가?


차라리 사회에서 인정되는 정상(범주)의 인간과 다른 인간도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고, 차별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오히려 차별받는 소수자 인간에게 우리가 운동을 하고 있기때문에 당신들은 곧 정상 범주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 일인가?


여성 운동의 성과로 얻은 사회의 변화를 목도한 전문가들은 충분히 스스로 바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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