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터 11회 글쓰기 작문
운전대를 잡는 일
운전면허를 딴 지 7년, 그리고 장롱 면허를 벗어난 지 3년이 되었다. 대학 입시도 재수를 하지 않았는데 운전면허는 삼수를 했다. 두 번째 시험에 떨어졌을 때, 어머니는 ‘너는 운전 감각이 전혀 없는 거니’ 하며 한숨을 쉬셨다. 총 비용이 100만 원을 넘어갈 즈음이었다. 시험 때마다 찍힌 도장으로 가득 찬 나의 연습 면허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첫 도로 주행 시험에서 시험장을 나서기도 전에 시동이 3번 멈춰서 실격했다. 학원 차량의 클러치가 너덜너덜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낡은 학원 차량은 클러치를 꾹 눌러야 기어를 변경할 수 있지만,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는 시험 차량은 클러치를 살짝만 눌러도 기어 변경이 가능했다. 학원에 배신당한 것 같아 내적 울분이 치밀어 올랐고, 운전면허 따위는 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는 회차 지점에서 후진 기어 변경에 실패해 탈락했다. 차량을 갓길에 세우고 내리라는 검사관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그는 시험장까지만 이라도 내가 주행하면 안 되겠냐는 나의 요청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2번이나 클러치 때문에 떨어지고 나니 ‘차라리 클러치를 사용하지 않는 2종 시험을 봤으면…’하고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학원에 가서 도로 주행 연습을 했고 세 번째 도로 주행 시험은 합격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작은 성공의 기쁨이 이리도 행복한 것인지. 한시라도 신분증을 빨리 받기 위해 시험장에서 대충 찍었던 증명사진 속의 나는 아직 웃고 있다.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파란 후드 티셔츠를 입고서.
첫 운전이 11인승 스타렉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장비가 가득 찬 스타렉스를 몰고 한강을 건너던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운전대를 놓칠까 봐서 사이드미러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시절이다. 60km/h 이상 속도를 내지 않던 도로 주행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장비를 가득 싣고 가기 때문인지 나의 첫 번째 스타렉스는 느렸고, 함께 탑승한 친구들이 보기에도 위태로웠다.
위태로움은 결국 화를 불렀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실수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범퍼로 학교 내 기물을 파손했다. 커브를 돌다가 옆 범퍼를 긁었다. 상처만 남은 첫 주행이었다. 나는 학교 본부에 불려가 면담을 받았고, 렌터카 업체에 차량 수리비 명목으로 100만 원 가량의 현금을 배상했다. 대학 시절 내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을 모두 운전 수업료로 낸 셈이나 다름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대인 사고는 일으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참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고액의 수업료를 내며 내가 얻은 것은 조금 나아진 운전 실력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행복을 찾았다. 제주도 여행을 떠나고, 기념일에 외제 차 드라이브를 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즉석으로 결정해서 한강 나들이를 떠날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운전 면허가 장롱 신세인 분들은 주차장을 나서지 못하더라도 일단 차를 빌려 연습 보는게 좋다. 작은 행복을 위해 소정의 수업료는 부담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