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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ahn Apr 23. 2019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PD 스터디 4/23 작문 

작문 제시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려댔다. 무음으로 해놓을 것 하고 후회가 됐다. 곧 있으면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오후의 단잠을 망친 전화가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02-… 서울에서 온 전화였다. 휴학을 한 이후로 서울에서 온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전화일까 궁금해졌다. 어차피 들어보고 이상한 전화라면 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님 안녕하세요” 상냥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개인 정보 유출이 아무리 흔한 일이라지만 이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잘 지내시죠?”안부를 먼저 물어보는 광고 전화가 세상에 어디 있나 싶어서 수화기 너머의 여성과 몇 마디 더 나눠 보기로 했다. 전화할 상대가 없어 외로운 참에 잘 됐다 싶었다. “휴학 중이긴 한데 영어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어요” “요즘 영어 공부 어렵고 힘드시죠. 쉽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상대는 판매를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잠깐 잊을 만큼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저희가 지금 제공하고 있는 CNN 번역 서비스가 있는데요. 이거 4달에 20만원이면 이용 가능하세요. 한달에 5만원으로 CNN 보시면서 영어 공부하면 정말 실력 향상 금방이거든요.” 4달에 20만원은 솔직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그렇지만 상냥한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단칼에 안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알바를 하고 있어서 제 돈으로 지불할 수 있기는 한데… 솔직히 저한테 조금 부담되는 가격이니까 부모님이랑 상담하고 나서 결정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명확히 말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화근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는 전화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나를 낚으려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CNN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구독… 이거 아시죠? 20만원으로 이런 서비스 다시 받아보시기 힘들거든요. YBM에 정식으로 등록하고 하는 거라서 믿을 만해요. 이 정도도 부담 못하시면 영어 공부하기 좀 힘드시죠. 지금 결정하시고 부모님한테 말씀드려도 되지 않나요?” 이 정도도 스스로 결정 못한다는 식으로 내 신경을 슬슬 긁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이 때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 실적을 채워야 하는 그녀는 시간이 곧 돈이었기 때문이고. 나는 돈은 없지만 시간은 넘쳤다. 그렇기에 그녀의 시간을 한참이나 뺏고 있는 진상 고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신경 좀 긁는 것은 그러려니 했다. 줄 듯 말 듯 결국은 안해주는게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일이다. 


“아 그러니까 제가 영어 공부를 바로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잡지 보고, CNN 본다고 해서 영어 실력 바로 느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20만원이면 저한테는 고액이니까...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죠.” 내 사정을 한참 얘기하는 데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그걸 또 다 들어주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텔레마케팅 업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친절함과 인내력을 갖추고 있었다. 


“고객님 그러면 한달에 15만원으로 해드릴 테니까 하실래요?” 원래는 ~님이었던 호칭이 고객님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심경 변화가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나는 이때쯤 등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등록해 줄 듯 말 듯 계속 한숨을 쉬며 연기를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연기가 한결 쉬웠다. 


 “하아… 네 고객님 안할 거면 끊으세요.. XX” 그녀가 나를 포기하고 결국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녀가 나를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그렇지 텔레마케터가 고객에게 직접 욕을 할 정도 진상이었나. 나는 전화를 끊고 문득 공허해졌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피드백


ㅋㅋㅋㅋㅋ이것도 있었던 일인가요? 뭔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소재인거같아요. 줄 듯 말 듯 결국은 안주는게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일이라는 말이 매우 와닿았어요.. 이걸 주제로 두고 좀 더 내용을 추가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주제가 좋은것같습니당. 사회적 밀당 같은? 텔레마케터와 나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서 텔레마케터의 빡침?이 좀 더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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