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9 조선비즈
며칠 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기자 간담회를 봤다. 오후 3시경에 시작해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질문하는 기자를 그리 오랜 시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언론사들도 실시간 중계를 했다. 실시간 댓글 창에서는 질문하는 기자의 수준을 두고 각자의 의견을 쏟아냈다. 칭찬과 비난이 섞여 있었다. 아마 질문하는 기자가 그 실시간 댓글을 봤다면 억울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기자는 질문하는 직업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업무에서는 질문하는 감각이 무뎌졌다. 또는 법조팀 소속이 아닌 민주당 출입기자라 사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식이다. 어떤 기자는 조국 후보자에게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다. 곧바로 타이밍 좋게 기자 간담회를 연 민주당과 일문일답을 가로막는 간담회 자리에 패배했다는 함의가 있었다고 했다.
오후 4시 경의 나는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에 지쳐있었다. 인터넷에는 2주 간 12만 건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결국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의혹은 크게 3가지 뿐이었다. 기자들의 어떤 질문에도 조국 후보자의 대답은 "나는 모른다"였다. 처음에는 기자들이 알면서도 반복 질문하는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조국 후보자는 의혹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기자 앞에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계속 질문하다보면 제 풀에 지쳐 쓰러져 말실수를 하거나 실토할 것이다. 그런 추측은 조국 후보자 앞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자들의 질문을 교묘히 바꿔가며 대답하고 빠져나갔다. 아마 서울대 능구렁이학과가 있다면 그가 수석일 것이다.실시간 중계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기자들의 무능함을 질타하고 있었다. 일문일답 형식이 아닌 순서를 받고 질문하는 입장에서는 회사를 대변해 질문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을 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회사가 아닌 기자 그 자체로만 생각했다.
오후 6시 경에는 남성 기자들에게 조국 후보자의 어퍼컷이 날라왔다. 어떤 여성 기자가 분위기 전환 겸 2주 간 쏟아진 각종 의혹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조국 후보자는 여배우 후원썰, 지하주차장 포르쉐썰 등 근거없는 각종 의혹에 대해 언급하며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퍼컷은 딸의 집에 밤늦게 남성 기자들이 와서 문을 두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조국 후보자는 자신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즉시 사과했다. 물론, 아버지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취재 환경이 갖춰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후보자로서 검증받아야할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굳이 남성을 언급한 그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앞에 앉아 있는 수많은 남성, 여성 기자들을 분절시켰으며, 그 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남성 기자들의 질문을 무력화시켰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2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저녁 식사 시간이 왔다. 기자들은 질문 거리를 생각하느라 식사를 거의 못했을 것이다. 내가 봐왔던 기자들은 대부분 밥 한 숟갈에 문자 한 번이었다. 어쨌든 그 시간에 맞춰서 나도 저녁을 먹었다. 나는 여유가 있었기에 평소 내가 조국 후보자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실제 간담회를 지켜본 결과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곱씹어봤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정부 법무부장관으로서 조국은 영리해서 어려운 업무도 잘 해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왔다. "왜 자신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대해 조국 후보자는 자신말고도 검찰 개혁의 적임자는 많다고 먼저 대답했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앞서 언급하지는 않더라. 역시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인간 조국에 관해서는 실망스러웠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려고 했던 위선자, 가정사에는 일체 관심 없는 아버지, 자기 학생이나 부하도 아닌 언론사 기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권위주의적 말투. 내가 기자였다면 그런 류의 사람과는 독대하기 정말 싫다고 생각했다. 다대일로 만나는 기자간담회 자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위에 언급한 부분에 대해 깊히 반성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했다. 별로 설득은 되지 않았다.
오후 7시 경에 2라운드가 시작됐다. 오후와는 달리 빈자리가 곳곳에 생겨났다. 여전히 반복 질문은 나오고, 조국 후보자의 답변은 모른다였다. 실시간 생중계도 계속 됐다. 모두의 관심 사안이기 때문인지 시청자 수는 그닥 줄어들지 않았다. 독특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기자들은 상대 정당에 몸담고 있는 당직자에게 대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거리를 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기자가 직접 질문을 찾지 않고 저렇게 질문이나 찾고 있는 꼴이라니. 나는 궁금했다. 모두에게 공개된 페이스북이 아니라 카카오톡으로 질문하면 되는 걸까? 포렌식이 불가능한 텔레그램으로 하면 용인되는 것이었을까? 남은 기자들은 독기를 채우고 있었다.
오후 10시 경에는 기자들도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모른다로 일관하는 조국 후보자의 말실수를 끌어내기 위해 유도심문을 하기로 시도했다. 그러나 상대는 서울대 로스쿨 교수인 조국이었다. 수사권도 없는 상황에서 기자가 이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모르쇠는 새벽까지 이어진 후에야 마무리됐다. 소득은 없었다. 기자들은 완패했다. 누가봐도 민주당과 조국 후보자의 완승이었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에 대한 예방 주사도 놨고, 2주간 자신을 괴롭혔던 기자들을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눌렀다.
인터넷 시대가 들어서면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이제 기자는 SNS와 실시간 생중계의 등장으로 즉각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예전엔 취재 이후에 기사가 내기까지 숙고할 시간이 있었다.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일들이 이뤄졌다.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저널리즘의 원칙도 바뀌었다. 권력에 맞서 질문하는 기자보단 복잡다단한 세상을 풀어주는 기자의 역할이 커졌다. 기자들이 실시간으로 평가받는만큼 권력자도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역량에 불만을 가진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자한당 게시판에 직접 청문위원직을 내려놓으라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