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벤트 당첨운이란 것이 지지리도 없는 편인데, 며칠 전 운 좋게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바로 달 출판사에서 나온 이지은 작가님의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이다.
그런데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사실 한 달 전부터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출판사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해 계속 마케터로 일해왔지만, 몇 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커리어 방향성을 편집자로 변경했다.
사실, 정확히는 마케터와 편집자 양쪽의 영역에 한쪽씩 발을 담그고 있는 모양새이다.
왜냐하면 마케터에게도 편집자로서의 태도와 역량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편집자에게도 마케터의 기술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편집자 일을 배우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글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의 문체와 어조가 앞으로 롤모델로 삼고 싶을 만큼 좋았다. 경험담을 풀 때는 항상 공감과 유머가 있었고, 중간중간 유용한 정보도 담겨 있었다.
내가 좋은 콘텐츠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 경험, 사유가 모두 들어가 있는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작가님은 '좋은 것이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하게끔 훈련받은 사람이 편집자'라고 표현하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것이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사실은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단순히 빠르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목표로 취향 탐색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 편집자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직업적 특성상 항상 다양한 문화를 탐색하고 경험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또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작가로 모시기 위해)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니까.
뭐랄까, 단순히 표현하면 편집자는 내 눈에 '핵인싸'로 보였나 보다. (물론, 막상 편집자 일을 배워보니까 그렇지는 않다)
책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표현이었다.
돌이켜보면 자기계발서를 참 많이 읽었는데, 내 세계를 넓혀가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의 소비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확실히 한계도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찾아봐야 한다. 다만 나는 내가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란 걸 아는 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편집자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단순하다. 아무로 모를 때 누군가를 발견하는 기쁨이 정말 크다. 내가 공을 들여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나에게로 왔을 때, 그 희열은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동경했던 편집자의 장점 한 가지.
멋있어 보이는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 인연이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넘어가는 경험을 가끔 바라고 있다. (물론, 적정선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편집자는 좁고 깊은 취향보다 얇고 넓게 퍼진 취향의 소유자가 좋다. 기획이란 자신의 관심사에서 시작하지만 그 관심사가 대중들의 관심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접점을 찾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상품(가격의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위에 있는 문장에서 기획에 대한 관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요즘 편집일을 배우고 있는 선배님께서도 자주 하시는 말씀과 결이 비슷했다.
"막말로 편집은 나중에 AI가 할 수도 있어. 그런데 기획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해."
"그리고 기획이 어려우면 네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돼."
들을 때마다 "어우, 너무 좋은 말씀이구나"하고 감탄하지만, 나는 아직 좋아하는 게 많이 없어서 기획이 어려운가 보다.
언젠가는 꼭 대중과의 접점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기획자이자 편집자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는 창의적인 업무와 직업인의 기술 및 제반 업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일을 한다. 오로지 한 영역에서 일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스트레스야 많이 받겠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의성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일이 진행될 수 없고, 기술 및 제반 업무만 가능하면 창의적인 기획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직 두 개 다 어렵다)
"일의 목표가 만족스러운 책을 내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다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의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번 거쳐야만 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을 하나씩 놓아가는 것이다."
"더불어 이 이야기가 꼭 필요한 독자를 상상하고 찾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들이는 긴 시간이야말로 내 인생임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사실 지금도 출판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맞을까 하고 고민한다. 하만 지구 상에 사라질 직업이 아니고서야, 그 분야가 비전이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그곳에 가서 최선을 다해봐야 아는 것이 아닐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보여주세요. 계속해주세요. 그 말의 다른 버전이 어디에든 써보라는 말인 것이다."
이지은 편집자님은 예비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유독 "일단 보여주세요. 계속해주세요."에서 눈길이 계속 멈췄다.
아마도 나에게 속삭이는 응원의 말로 다가왔나 보다. 아직 편집자로서 미숙해도, 어설퍼도 계속 도전해보라는 말로 (나 좋을 대로) 해석했다.
연말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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