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에디터로 살며 배운 것들
지금까지 계속 마케터로 일해오다가, 문득 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중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은 단연 편집자. '에디터'로 말하는 것이 좀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우리말로 순화하는 습관을 배웠기 때문에 편집자로 말하기로 하자.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출판사에서 잠깐 같이 일한 적이 있던 편집자님이 계셨다. 그분에게 편집일을 배우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질까 여기에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남겨보기로 한다.
교정교열을 하다 보면 독자들에게 생소한 용어를 설명해주기 위해 괄호 안에 설명을 넣어주거나, 각주로 용어를 설명해줘야 하는 단어를 선별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많은 초보 편집자들이 (물론 나도 그랬지만) 설명이 필요한 단어의 기준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고 내용 중에 '정주행'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치자. 20대인 나는 이 단어를 당연히 알고 있지만, 50대 - 60대 독자는 이 단어를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단어에 각주나 부연설명을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중요하지 않은 단어는 설명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어를 특정 세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개념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계속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문장을 온점까지 도착했을 때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자가 특정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순간 경쟁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1번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당연히 교정교열을 할 때는 좀 더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고민해야 하지만, 표현에 대한 고민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표현을 고민하기 전에, 개념 A가 전체 내용 안에서 불필요한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하고, 특정 가치관이나 판단이 들어간 개념이 아닐까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의 과정이 있어야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할 수 있고, 삭제하지 않더라도 좀 더 자연스러운 위치와 흐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
글이 되었든, 다른 콘텐츠가 되었든 다른 사람이 만든 창작물의 초안을 수정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함부로 생략된 내용을 추측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문제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원작자가 초안에서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중의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는 반드시 원작자에게 직접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는 분명 80~90%의 확률로 A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거야!"라고 편집자가 확신해도 원작자는 10~20%의 확률로 B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편집자가 자의적으로 생략된 내용을 추측하는 순간 콘텐츠에는 원래 의도와 다른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편집자는 절대로 생략된 내용을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 된다.
교정교열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나의 경험과 상상이 문장을 이해시켜 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들었던 어떤 편집자분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눈과 뇌를 씻고 문장을 보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즉, 모든 문장을 볼 때는 나의 (주관적인, 개인적인) 경험을 배제하고 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 문장을 완성시켜서는 안 된다.
처음 편집 일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가질 것이다. "내가 원작자의 콘텐츠를 어느 수준까지 편집할 수 있을까?". 즉, 원작자의 개성에 대한 존중과 편집자의 편집관이 충돌하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이 수정을 적용했을 때 더 나아지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옳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편집자가 고쳐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의 주관과 감일뿐이다. 즉, 내가 이것을 고치는 이유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는 이유를 찾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초보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볼 때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원고의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다. 원고 내용에 몰입하게 되면 수정해야 하는 부분을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즉, 내가 아무리 교정교열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아도 업무에 집중하는 태도가 잘못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 편집자의 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방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
일을 가르쳐주신 선배님께 자주 들은 말이 있다. "교정교열은 막말로 나중에 AI가 할 수도 있어. 근데 결국 기획은 사람이 해야 돼." 결국 가장 중요한 본질은 기획이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교정교열을 잘한 들 글의 내용이 재미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실제로 매일매일 재미없는 원고를 붙잡고 교정교열을 하는 편집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배님은 나에게 항상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내가 생각하는 기획이 책으로 나와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생각해보라고도 조언해주셨다. 너무나 거대한 담론 같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조언이기도 했다.
편집자는 정확하고 친절한 편집을 통해 좋은 콘텐츠를 세상에 선보여야 하는 기획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