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회사를 이직한 후에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있는 요 몇 달 '몸으로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수십, 수백 페이지의 업무 설명서에서 텍스트를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직접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서에 적혀있는 설명도 그 나름의 중요성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 <뇌가 아니라 몸이다>를 읽고, 최근 몇 년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포인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몸이 지능을 형성하고 보유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며, 지능이 정신 안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견해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몸은 단순히 뇌를 감싸는 도구가 아니라, 지성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체화된 지식'이다. 체화된 지식은 생각하기와 행동하기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체화된 지식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형태의 지식이다. 몸에 각인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는 것을 의식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행동할 수 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 몸은
- 뇌의 지시 없이도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다
- 무엇인가에 순간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 타인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 감각과 지식을 저장하고 무의식적으로 소환한다
- 세상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관찰할 수 있다
- 수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자전거 타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은 균형, 중력, 물리량 등의 복잡한 물리학적 지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전거 타기는 실제적 경험이고, 그 방법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전거 타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봄으로써 우리는 자전거 타기를 배운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일정한 양식에 따라 설명하지 않고도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예시를 통해 저자는 묘사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얻은 지식의 차이를 생각해야 하고, 묘사로 얻은 지식을 직접 경험한 지식보다 신뢰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몸이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5가지의 중요한 특징이 작용한다.
▶ 관찰 : 우리는 몰입과 모방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 연습 : 몸은 반복된 행위를 통해 기술을 습득한다
▶ 즉흥성 : 체화된 지식은 실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익숙하지 못한 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
▶ 공감 : 몸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의도, 감정, 느낌 등을 이해한다.
▶ 보유 : 우리 몸은 지식을 보유하고 다시 불러낼 수 있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뇌를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지능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대해 균형점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알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은 우리의 정신과 몸, 환경과 경험 사이의 상호 소통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표는 체화된 지식의 개념을 조명하고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경험해 얻은 것을 신뢰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적극적으로 체화된 지식을 발전시킬수록 불확실성에 더 잘 대처하게 되고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로 몸을 사용할 수 있다.
체화된 지식은 몰입, 관찰, 그리고 행동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매우 접근 가능한 형태의 지식이며 교사나 복잡하고 값비싼 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체화된 지식은 비즈니스에도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1) 차갑고 분리되어 있기보다 느낌이 있고 감정적이다
2) 이론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다
3) 문서화 작업이 아닌 사람에 의해 메시지가 조직 내와 주변으로 전달된다.
사람과 시장을 이해하려면 데이터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 아닌 경험에 근거한 느낌과 직관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즈니스 시장에서는 체화된 지식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을 얻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 전문성을 유지하려면 정신과 몸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몸이 뭘 해야 하는지를 알 때 비로소 전문성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본능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며,
그 작업을 할 때 의식적으로 정신을 작동시킬 필요가 없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뇌의 역할만을 지나치게 믿거나, 이론을 통합 지식습득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