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달 서평 16화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이유

by 쌈무

오늘은 사이토 다카시 작가의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읽었다. '신은 죽었다'는 너무나 유명한 말을 남긴 시대의 철학자이지만 정작 그가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깊게 알지 못했다. 다행히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철학과 사상을 접해보려고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혼자 힘으로도 더 고귀하고 깊은 삶을 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굳이 신을 믿어야 하고,
왜 신이 정한 도덕에 맞춰 살아야 하며,
왜 누구도 가보지 못한 내세의 세상을 꿈꾸어야 하는가?"


이것의 니체의 생각이다.


니체는 19세기까지 서구사회를 지배하던 기독교적 도덕률과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압도하는 내세를 향한 절대 가치를 비판했다. 그러한 것들이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허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기존의 것들을 헐뜯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는 지식 탐험을 통한 문화비평에 가까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의 철학이 두려움이나 소심함, 우유부단함 같이 어른이 되면 마음에 달라붙게 되는 정신의 때를 털어내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니체는 '초인을 향해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이 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동경하는 것을 향해 끝없이 화살을 쏘아대는 전사가 되어라'일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겠다는 결의로 미래를 향해 계속 뛰어오르려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막연한 이상이나 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과학적으로 구축된 목표인 것이다. 니체의 말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하자면 '향상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그의 저서 <즐거운 학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대상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또한 니체는 사람을 사귀는 관계에 있어 '나의 향상심을 높여주지 못하는 인간과는 사귈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우정이란 독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니체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하는 등 청년들에게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따분함, 권태감, 불안감과 싸운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거야'라고 믿거나, '내가 하는 일은 비록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라고 받아들이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편이 좋다.


니체는 '지금의 삶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라고 말했다.



'좀스럽다'는 말은 사물이나 현상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고 오밀조밀한 것만 세세히 따지는 소심한 행위를 가리킨다. "좀스럽게 굴지 마라!" 니체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지탱하는 주관과 철학은 굳게 지키되 그 밖의 것들은 대범하게 대자연의 흐름에 맡기라는 얘기다.


그리고 니체는 '욕망해야 삶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다'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창조도 성욕도 모두 적극적인 의욕이다. 그러니 욕망을 덮어두지 말고 (적절한 범위 안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사회인으로서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든 평범한 일을 하든,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임해야 순조롭게 잘 풀린다.
그래야 사소한 제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 미적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 본능을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을 대함으로써 얻게 되는 감동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회로를 갖는 것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힘이 된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는 교양보다는 체험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한다. 아름다움, 숭고함이 사람에게 직접적인 일상의 활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니체는 최고 효율의 쾌적한 삶이 가져다주는 방식의 맞은편에 있는 것들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효율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우리 인생을 다채롭게 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체는 바르게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그 무엇보다 활발한 창조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럴까 저럴까 우왕좌왕하지 않고, 냉철하게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더 나은 창조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교양은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책의 내용을 생활 속에서 얼마나 적용할 수 있는가, 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가, 니체는 바로 여기에 교양인이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해보면 반드시 현실은 움직인다. 변명하며 꾸물대는 인생에 미래는 없다. 인생의 성공이란 어쨌든 목표를 향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차라투스트라다.


니체는 세상 사람들의 소심함이나 겁 많은 나약함을 스스로의 생명과 정신을 걸고 말끔히 청소해주려고 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청소해야 할 정신의 찌꺼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을 '이런 것이다'하고 단정하며 체념해버리는 태도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다. 위험을 받아들일 결심 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아가면, 작은 도랑조차 뛰어넘지 못하게 된다. 니체는 그런 나약한 태도를 가장 경멸했다.


온몸을 던져서 읽어라. 온몸을 던지며 살아라. 그것이 니체가 현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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