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알고보면 10년 전부터 시작된 기획?
부산에서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대학생 인문학 캠프'라는 행사가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조직위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오직 대학생에 의해, 대학생을 위해 기획된 부산 유일무이 '전국 인문학 캠프'", "지금까지 전국 6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약 1,000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명실공히 부산 대표 인문학 캠프"를 표방한다. 2012년 1회를 시작으로 내가 2013년 4회 캠프에 참여했었는데, 오랜만에 조직위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작년에 9회 캠프를 연 듯 보였다. 매년 열리진 않고 있지만 내 역사의 일부가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는 부분은 꽤 고무적이다.
2013년은 한창 대외활동에 목말라하며 이것저것 찾아서 하던 시기라, 인문학 캠프 참여 역시 그 일환 중 하나였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접해, 딱히 깊게 고민하지 않고 부산으로 향했다. 2박3일 간 진행된 제4회 인문학 캠프는 △부산 해운대 관광 투어 △인문학 관련 명사 초청 특강 △조원 간 브레인스토밍 △조별 발표 등으로 구성됐다. 경쟁 조가 두 자릿수는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가운데 우리 조가 최우수 조의 영예를 얻어 구청장 표창을 받기에 이르렀다.
캠프 자체의 재미도 그렇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소기의 성과를 내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나 싶다. 이날 내가 얻어온 건 스펙이 될 수 있는 표창, 좋은 인연이 된 조 구성원들 ―캠프 끝나고 종종 모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지속적인 만남은 어려웠다―, 여러 새로운 경험 정도다. 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기획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인문학 캠프'라는 행사의 체계도 단편적이나마 학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단지 기획자의 삶 이전에는 써먹지 않았을 뿐.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2023년 인문실험 공모전 - 시민협업형' 사업에 선정됐다. 몇 명의 시민과 함께 인문학 관련 활동을 전개하며 실험을 해보는 사업이다. 처음 기획서를 쓸 때는 시민을 강사로 초빙해 인문학으로 심리를 돌보고 관련 콘텐츠를 연달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어떻게 선정은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떨치지 않는 사고가 있었다. '이게 재밌을까?'
이 생각이 꾸준히 잠식해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프로젝트를 전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차 떠올린 게 2013년 당시의 인문학 캠프다. 그때도 명사 몇 명이 특강을 했으니 큰 틀에서 보면 차이가 그다지 크진 않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 부분을 채워 넣어야 했다. 내가 중점을 둔 부족한 요소는 '캠프'였다. 그렇게 당초 기획한 인문실험 프로그램은 캠프의 형식으로 노선을 바꿔 본격적으로 추진 단계에 들어섰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