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회의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작년 말 한 송년회 자리에서 왜 그렇게 꼭꼭 숨어서 활동하냐는 얘길 들었다. 같이 뭐 하나 하고 싶었는데 도통 내 행적을 알 수 없었다나. 딱히 은둔해 있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싸돌아다녔는데. 허허. 그래도 서로의 시야 바깥으로 가려지면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24년 새해가 밝았지만, 숨김없이 감정을 드러내자면 썩 상쾌하지는 않다. 왜냐고 묻는다면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것 중 하나로는 완치되지 않은 번아웃일 거다. 아직 치유 중인데도 벌써 2024년엔 뭘 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으니. 확실히 작년 초에 한해살이를 짜며 느꼈던 두근대는 감정이 지금은 소실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주면서 또한 가장 큰 성장의 촉진제가 됐던 건 기획자 라이프였다. 마치 채찍과 당근 마냥 두들겨 맞은 만큼 보상을 받는 체계가 이루어졌달까. 고통 없이 열매 없다는 자본주의의 철칙을 고스란히 답습했지만, 힘든 건 힘든 건데 어쩌라고.
충분히 할 만큼 하지 않았냐는 얘기를 들을 때도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지금의 내겐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기획자로 살아온 지 4년째. 이제 돌아가는 시스템이 얼추 파악되긴 하지만, 어떤 분야든 더 넓고 고차원의 영역이 있는 법이다. 이 생각을 나보다 몇 수 위에 있는 기획자 선배들에게 육성으로 내뱉으면 얼마나 코웃음을 칠는지.
매년 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올해는 기획자 일에 쓸 열정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혹자는 그러더라. '과연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네버 세이 네버라고, 물론 올해 어떤 기회가 주어지고 어떤 상황에 닥치느냐에 따라 다를 거다. 이것 또한 내 바람의 일부지, 어떻게든 내려놓아야겠다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밟는다는 건 아니니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언행 불일치의 사례를 보면, 얼마 전까지는 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을까 생각하며 혀를 찼다. 이제는 내가 모르는, 생각 전환의 계기가 된 스토리텔링이 있을 거라고 되뇐다. 줏대 없는 인간이라고 손가락질받는다면, 기질을 꺾을 수밖에 없었던 스토리를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당신이 내가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님에야,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쩌라고.
전술했듯이 주체성은 약간 꺾일 것으로 예상되나, 여전히 올해의 내게는 무수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기획자로서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마다하는 게 오히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일 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교육 콘텐츠 쪽으로 활동해보고 싶다. 기획자도 좋고 교육자도 좋다. 올해도 무엇 하나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사례만 생긴다면야, 지금은 비록 회의적이더라도 2024년 끝에 다다랐을 때는 이날의 사고가 미래를 위한 심층적인 고찰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