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건 모르겠지만 관심은 받고 싶어
요즘 문수진이라는 싱어송라이터에게 푹 빠져있다. 노래가 퍽 내 스타일이라, 혼자 작업할 때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둔다. 어두컴컴한 작업실에 은은한 조명을 밝혀두고 배경음으로 깔아두면 좋은 노래랄까. 아티스트가 가진 특유의 몽환적인 목소리는 골방에 틀어박힌 예술가적인 면모를 한층 더 부각해주는 느낌이다. 이게 내 머릿속에 박힌 예술가의 이미지이자 바라는 예술가의 상이다.
어느덧 레지던시에 입주한 지도 두 달이 넘었다. 나만의 작업실이 생기다보니 아마 이런 예술가들의 작업 환경에 더 관심과 흥미를 기울이는 게 아닐까.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자칭하기가 여전히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레지던시 입주 청년 예술인이 아닌, 청년 기획자라고 말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물론 재단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예술가'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인적으로 꽤 많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문화 계통의 일을 하다 보면 예술가들과 안면을 트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내가 만나온 예술가가 모두 그러한 건 아니지만, 자칭 예술가라는 인간들은 자신의 예술적 감각에 대한 자부를 넘어 교만에 빠진 행태를 때때로 보인다. 이같은 성향의 예술가들은 타인의 예술적 관점을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려 든다. 자신의 예술이 제일인 양.
작년에 한 자칭 문학가와 갈등을 빚은 적 있다. 그의 글에 대한 자존심은 엄청나서, 남의 글이나 이야기를 흔쾌히 인정해주는 꼴을 보기 드물었다. 이는 내 가치관과 상반되는 일이지만, 그것 또한 그의 신념이라면 존중하겠노라고 했다. 문제는 글에 대한 관점의 간극이 사람에 대한 감정까지 퍼져나간 데서 온다. 그의 남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 너의 글은 틀렸다느니 엉망진창이라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인간에 대한 학문을 수학했다고? 문예창작과는 알고 보면 인문학이 아니지 아닐까?' 물론 그와 내가 틀어진 데는 더 깊은 사연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를 문학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바로 예술가라 하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보는 가장 큰 이유다. 이전에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자청했다면, 이제는 구태여 예술가라는 단어를 활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작품을 낼 테니, 언젠가 예술가에 다다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제대로 된 개인 저서를 내놓지 않은 데서 온 부담감이 예술가라는 단어를 밀어내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레지던시 입주 조건 중 하나로 올해 내에 작품을 내놓는 것이 있는데, 이왕 예술가가 될 운명이라면 사람다운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술과 문화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