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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 Jul 24. 2024

제가 예술가라구요?

글 쓰는 건 모르겠지만 관심은 받고 싶어

요즘 문수진이라는 싱어송라이터에게 푹 빠져있다. 노래가 퍽 내 스타일이라, 혼자 작업할 때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둔다. 어두컴컴한 작업실에 은은한 조명을 밝혀두고 배경음으로 깔아두면 좋은 노래랄까. 아티스트가 가진 특유의 몽환적인 목소리는 골방에 틀어박힌 예술가적인 면모를 한층 더 부각해주는 느낌이다. 이게 내 머릿속에 박힌 예술가의 이미지이자 바라는 예술가의 상이다.

예술가들은 새벽에 영감이 잘 떠오른다는데, 그래서 일부러 어두침침한 곳에서 작업을 하는지...? (살짝 나 또한 그런 부류인 듯하다.)

어느덧 레지던시에 입주한 지도 두 달이 넘었다. 나만의 작업실이 생기다보니 아마 이런 예술가들의 작업 환경에 더 관심과 흥미를 기울이는 게 아닐까.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자칭하기가 여전히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레지던시 입주 청년 예술인이 아닌, 청년 기획자라고 말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물론 재단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하지만.

'울산 노상훈'이라고 검색하면 레지던시 입주 예술인 관련 기사가 쭉 나온다. 이래저래 인터뷰에 응하는 중...

솔직한 마음으로는 '예술가'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인적으로 꽤 많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문화 계통의 일을 하다 보면 예술가들과 안면을 트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내가 만나온 예술가가 모두 그러한 건 아니지만, 자칭 예술가라는 인간들은 자신의 예술적 감각에 대한 자부를 넘어 교만에 빠진 행태를 때때로 보인다. 이같은 성향의 예술가들은 타인의 예술적 관점을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려 든다. 자신의 예술이 제일인 양.

2021년에 만든 책에 수록한 글. 지금도 이 마음은 크게 변함 없다.

작년에 한 자칭 문학가와 갈등을 빚은 적 있다. 그의 글에 대한 자존심은 엄청나서, 남의 글이나 이야기를 흔쾌히 인정해주는 꼴을 보기 드물었다. 이는 내 가치관과 상반되는 일이지만, 그것 또한 그의 신념이라면 존중하겠노라고 했다. 문제는 글에 대한 관점의 간극이 사람에 대한 감정까지 퍼져나간 데서 온다. 그의 남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 너의 글은 틀렸다느니 엉망진창이라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인간에 대한 학문을 수학했다고? 문예창작과는 알고 보면 인문학이 아니지 아닐까?' 물론 그와 내가 틀어진 데는 더 깊은 사연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를 문학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다운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이게 바로 예술가라 하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보는 가장 큰 이유다. 이전에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자청했다면, 이제는 구태여 예술가라는 단어를 활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작품을 낼 테니, 언젠가 예술가에 다다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제대로 된 개인 저서를 내놓지 않은 데서 온 부담감이 예술가라는 단어를 밀어내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레지던시 입주 조건 중 하나로 올해 내에 작품을 내놓는 것이 있는데, 이왕 예술가가 될 운명이라면 사람다운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술과 문화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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